친일인명사전 — 주요 인물 목록

국권 피탈과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 등에 오른 인물 가운데, 기록이 비교적 뚜렷한 20명을 이름·생몰·이력·친일 행적·후대 평가로 정리했습니다.

본 목록은 역사 교육을 위한 정리로, 공개된 사전·백과 자료를 근거로 합니다. 수록 여부·서술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과 공개 문헌을 따른 것이며, 전체 명단이 아닌 대표 인물 발췌입니다. 계속 보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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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李完用
1858~1926 · 본관 우봉 이씨
을사오적·정미칠적·경술국적

주요 이력 대한제국의 학부대신·외부대신을 거쳐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미국 주재 외교관 출신으로, 초기에는 독립협회에도 관여했다.

친일 행적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정미7조약,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총리대신으로 주도·서명하여 국권 피탈에 앞장섰다. 병합 후 일제로부터 백작(뒤에 후작)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았다.

후대 평가 한국사에서 '매국노'의 대명사로 꼽히며,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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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준 宋秉畯
1858~1925
정미칠적·일진회

주요 이력 무관 출신으로 일찍이 일본에 협력했고, 1904년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를 조직했다.

친일 행적 일진회를 이끌며 1909년 '한일합방 청원'을 벌여 병합 여론을 조성했다. 병합 후 백작 작위를 받았다.

후대 평가 이완용과 함께 대표적인 매국 인사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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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李址鎔
1870~1928 · 본관 전주 이씨
을사오적

주요 이력 왕족 출신으로 내부대신 등을 지냈다.

친일 행적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내부대신으로 찬성했다. 병합 후 백작 작위를 받았다.

후대 평가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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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순 朴齊純
1858~1916 · 본관 반남 박씨
을사오적·경술국적

주요 이력 외부대신·내부대신 등을 지낸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였다.

친일 행적 외부대신으로서 1905년 을사늑약 문서에 직접 서명했고, 1910년 병합 당시에도 내부대신으로 협력했다. 자작 작위를 받았다.

후대 평가 을사늑약에 서명한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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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택 李根澤
1865~1919
을사오적

주요 이력 군부대신 등을 지냈다.

친일 행적 1905년 을사늑약에 군부대신으로 찬성했다. 병합 후 자작 작위를 받았다.

후대 평가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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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현 權重顯
1854~1934 · 본관 안동 권씨
을사오적

주요 이력 농상공부대신 등을 지냈다.

친일 행적 1905년 을사늑약에 농상공부대신으로 찬성했다. 병합 후 자작 작위를 받았다.

후대 평가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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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무 李秉武
1864~1926
정미칠적·경술국적

주요 이력 일본 육군을 배경으로 한 무관 출신으로 군부대신을 지냈다.

친일 행적 군부대신으로 1907년 정미7조약과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관여했고, 병합에도 협력했다. 자작 작위를 받았다.

후대 평가 정미칠적·경술국적에 함께 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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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응 趙重應
1860~1919 · 본관 양주 조씨
정미칠적·경술국적

주요 이력 법부대신·농상공부대신 등을 지냈다.

친일 행적 1907년 정미7조약과 1910년 병합 과정에 협력했다. 자작 작위를 받았다.

후대 평가 정미칠적·경술국적에 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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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희 高永喜
1849~1916
정미칠적·경술국적

주요 이력 탁지부대신(재정 담당) 등을 지냈다.

친일 행적 정미7조약과 병합에 대신으로 협력했다. 자작 작위를 받았다.

후대 평가 정미칠적·경술국적에 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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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李容九
1868~1912
일진회

주요 이력 동학 교도 출신이었으나 변절하여 일진회 회장이 되었다.

친일 행적 송병준과 함께 일진회를 이끌며 한일합방 청원 운동을 주도했다.

후대 평가 동학에서 친일로 변절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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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금 朴春琴
1891~1973
친일 정치

주요 이력 일본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친일 행적 친일 폭력단체 상애회(相愛會)를 이끌며 노동자와 동포를 탄압했고,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회유에 나섰다.

후대 평가 대표적인 친일 정치 폭력 인사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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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술 盧德述
1899~1968
친일 경찰

주요 이력 일제강점기 경찰 고등계 형사로 근무했다.

친일 행적 독립운동가 검거와 고문에 가담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으나 처벌을 면했다.

후대 평가 친일 경찰과 고문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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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익 洪思翊
1889~1946 · 본관 남양 홍씨
친일 군인

주요 이력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조선인 군인으로, 일본군 중장까지 올랐다.

친일 행적 태평양전쟁기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관리했으며, 전후 포로 학대 책임으로 전범 재판에서 사형되었다.

후대 평가 일본군 고위 조선인 장성으로, 그 처신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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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崔南善
1890~1957 · 본관 동주 최씨
친일 문화·학술

주요 이력 문인·사학자로 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

친일 행적 이후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고 만주 건국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학병 권유 등 친일 활동을 했다.

후대 평가 신문학·국학의 선구라는 공(功)과 친일이라는 과(過)가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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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李光洙
1892~1950 · 본관 전주 이씨
친일 문화(문학)

주요 이력 근대소설 《무정》을 쓴 대표적 문인으로, 2·8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친일 행적 이후 창씨개명(가야마 미쓰로)을 옹호하고 학병 권유 등 적극적인 친일 문필 활동을 폈다.

후대 평가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이자 대표적 친일 문인으로, 평가가 크게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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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崔麟
1878~1958 · 본관 해주 최씨
친일 종교(천도교)

주요 이력 천도교 지도자로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

친일 행적 이후 변절하여 중추원 참의와 친일단체 활동에 나섰다.

후대 평가 독립운동가에서 친일로 변절한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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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란 金活蘭
1899~1970
친일 교육

주요 이력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장을 지낸 여성 교육가였다.

친일 행적 태평양전쟁기 학병·징병·정신대 동원을 권유하는 연설과 기고를 했다.

후대 평가 여성 교육의 선구라는 평가와 전시 친일 협력이 함께 논쟁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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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尹致昊
1865~1945 · 본관 해평 윤씨
친일 관료·계몽

주요 이력 개화파 지식인으로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교육가이자 언론인이었다.

친일 행적 일제 말기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며 친일 협력의 길을 걸었다.

후대 평가 개화·교육의 공과 말년의 친일이 함께 평가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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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安商浩
1872~1927 · 본관 순흥 안씨
친일인명사전 수록 · 의사

주요 이력 한국인 최초의 일본 유학 의사로 이왕가(李王家)의 전의(典醫)를 지냈다.

친일 행적 1916년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大正親睦會)의 창립 발기인 겸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후대 평가 민족문제연구소 편찬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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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安益泰
1906~1965 · 본관 순흥 안씨
친일인명사전 수록 · 작곡가·지휘자

주요 이력 대한민국 애국가를 작곡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친일 행적 1938년 이후 유럽 체류기에 일본 궁중음악 '에텐라쿠'와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전곡을 작곡·지휘하는 등의 행적이 있다.

후대 평가 민족문제연구소 편찬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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