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누구나 성과 본관을 갖지만, 모든 백성이 성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성씨가 퍼져 온 흐름을 짚어 봅니다.
초기의 성씨는 주로 왕족과 귀족의 것이었습니다. 삼국의 지배층과 신라의 김·박·석 등이 대표적이죠. 중국 문물의 영향으로 성을 쓰는 관습이 들어왔고, 통일신라를 거치며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고려 초, 지방 호족을 재편하며 지역을 근거로 한 본관제가 자리 잡았습니다. 태조 왕건이 공신과 호족에게 성을 내리고 본관을 정해 준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때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성 + 본관 체계의 뼈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에서도 초기에는 상당수 백성이 성이 없었습니다. 신분제가 완화되고 호적이 정비되면서 성씨가 점차 아래로 퍼졌고, 1894년 갑오개혁과 1909년 민적법을 거치며 사실상 모든 사람이 성과 본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씨는 수백 종에 이르며, 김·이·박 세 성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합니다. 본관까지 세분하면 김해 김씨·밀양 박씨·전주 이씨 등 특정 본관에 인구가 크게 몰려 있습니다. 성씨·본관별 소개에서 주요 본관의 인구와 유래를 볼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와 정착하며 새로 본관을 받은 귀화 성씨도 적지 않습니다. 베트남 왕족 후예로 전하는 화산 이씨, 위구르계 경주 설씨, 중국계 덕수 장씨 등이 있으며, 근래에는 외국 출신이 새 본관을 창설한 사례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초기에는 왕족·귀족 중심이었고, 조선 후기와 근대의 호적 정비를 거치며 모든 사람이 성과 본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이·박 순이며, 세 성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약 45%에 이릅니다. 본관까지 보면 김해 김씨가 가장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