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전투 (927년)

후삼국시대(927년)

공산 전투는 927년 후백제 견훤이 신라 경주를 침공하자 이를 구원하러 나선 고려 왕건이 대구 공산(지금의 팔공산) 일대에서 매복한 후백제군에게 포위된 전투로, 개국공신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해 전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배경

견훤이 신라 금성(경주)을 급습해 경애왕을 죽게 하자, 왕건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였다. 그러나 견훤이 이를 예상하고 공산 일대에 미리 매복해 있었다.

전투 경과

왕건의 군대는 공산에서 견훤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궤멸 위기에 몰렸다. 이때 장수 신숭겸이 왕건과 갑옷·수레를 바꿔 입고 왕건인 것처럼 싸우다 전사하였고, 그 틈에 왕건은 홀로 몸을 피해 간신히 살아남았다.

신숭겸과 함께 김락 등 여러 장수도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결과와 의의

공산 전투는 왕건이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겪은 가장 큰 패배로 꼽히지만, 신숭겸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왕건은 이후 세력을 재정비해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왕건은 신숭겸의 시신에서 머리를 찾지 못하자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사 지내게 하고 그를 장절공(壯節公)으로 추봉하였다.

자주 묻는 질문

공산 전투는 어디서 벌어졌나요?

지금의 대구광역시 팔공산 일대로 비정되는 공산(公山)에서 벌어졌습니다.

신숭겸은 왜 왕건 대신 죽었나요?

견훤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자 왕건과 갑옷을 바꿔 입고 그를 대신해 싸우다 전사함으로써 왕건이 피신할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

신숭겸 (927)평산 신씨 시조,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배현경 (936)경주 배씨 시조, 고려 개국일등공신 (개국무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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