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 오씨(同福 吳氏) — 동복을 본관으로 하는 오씨의 한 계열로 전해집니다.
동복을 본관으로 하는 오씨의 한 계열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복 오씨 인구는 약 72,394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오씨라도 본관(동복)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만취공파는 만취(晩翠) 오억령(吳億齡)을 파조로 합니다. 오억령은 오세현(吳世賢)의 아들로, 1582년(선조 15) 문과에 급제해 호당(湖堂)에 뽑혔고,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여러 차례 지냈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습니다. 『만취문집』을 남겼습니다.
아들 오익(吳翊)도 문과에 급제해 승지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뒤 실록 재간행에 참여했습니다.
묵재공파는 오억령의 아우 묵재(默齋) 오백령(吳百齡)을 파조로 합니다. 오백령은 문과에 급제해 도승지·대사헌·이조참판 등을 지내고 복천군(福川君)에 봉해졌습니다.
아들 오준(吳竣)은 판중추부사에 오르고 삼전도비문을 쓴 명필이며, 오단(吳端)은 인평대군의 장인입니다. 오단의 손자 오시수(吳始壽)는 남인의 영수로 숙종 때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동복 오씨의 이름난 인물은 대부분 이들 형제의 후손입니다.
의재공파는 의재(毅齋) 오전(吳詮)을 파조로 합니다. 오전은 1541년(중종 36) 식년문과에 급제해 삼도해운판관을 지냈으며, 『의재문집』 2권을 남겼다고 전합니다.
주서공파는 오가인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전남 강진에 사는 동복 오씨는 대부분 이 파에 속하며, 화순 동복에서 강진읍으로 옮겨 와 김해 김씨와 혼인한 오석철이 강진 입향조로 전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오억령, 오시수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동복 오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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