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산 감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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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 감씨(檜山 甘氏) — 경남 창원 일대를 본관으로 하는 작은 감씨로, 창원 감씨·합포 감씨로도 불리며 원나라 한림학사 감규를 시조로 전하고, 임진왜란 무장 감경인이 알려져 있습니다.

회산 감씨란

경남 창원 일대를 본관으로 하는 작은 감씨로, 창원 감씨·합포 감씨로도 불리며 원나라 한림학사 감규를 시조로 전하고, 임진왜란 무장 감경인이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감씨라도 본관(회산)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회산 감씨의 본관과 이칭

회산 감씨(檜山 甘氏)는 경상남도 창원시 일원을 본관으로 하는 감씨의 본관입니다. 위키백과는 창원 감씨(昌原 甘氏)와 합포 감씨(合浦 甘氏)를 이칭으로 소개하며, 감씨의 본관인 창원·회산·합포는 모두 지금의 창원시 일원을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설명합니다. 시조 이래 본관을 연릉(延陵)으로 삼다가 16세손 감철 때부터 회산을 본관으로 삼았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이 땅은 신라 때 굴자군이었다가 757년 의안군으로 이름이 바뀌고, 고려 때 의창현·회원현을 거쳐 1408년 창원부로 승격되었으며 1896년 경상남도 창원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조 감규

시조는 원나라 성종 때 한림원 태학사를 지냈다는 감규(甘揆)로, 자는 양원, 호는 연강이라고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감규가 1351년(충정왕 3년) 원나라에 머물던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모시고 고려에 들어왔고, 함께 온 공소·장경·황보영·독고억·변숙 등 7인과 함께 '8학사'로 불렸으며, 고려에서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라 연릉군에 봉해졌다고 적습니다. 다만 영문 위키백과 계열 자료에는 입국 시기를 1349년으로 적은 곳도 있어 연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중시조 감철과 연대상의 의문

중시조는 시조의 16세손 감철(甘喆)로, 북벌을 중지하도록 간한 공으로 금자광록대부에 오르고 회산군에 봉해져 본관을 회산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위키백과 자체가 짚듯이 금자광록대부는 1362년(공민왕 11)에 이미 폐지되었고 '북벌'은 조선 후기 효종 대의 일이어서, 이 전승은 연대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감규에서 감철까지의 세계와 회산군 봉작 사실은 족보의 전승으로만 보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시조 묘소와 향사

시조의 묘소는 원래 충청도 공모산에 있었고 임금이 지은 신도비가 무곡산에 있었다고 하나 모두 실전되어, 후손들이 세거지인 창원시 내리동에 제단과 신도비를 세워 매년 음력 4월 15일에 향사한다고 전합니다. 일정은 달라질 수 있으니 종친회에 확인하세요.

같은 뿌리의 여러 이름

병진보 서문에는 우리나라 감씨가 합포·충주·거창·창녕·부녕 등 5본이라는 설이 있으나, 이는 세거지 이름이고 회산 단일본이라고 위키백과는 소개합니다. 위키백과는 창원·합포·거창·부령·충주·창녕 감씨가 회산 감씨에서 갈라졌다고 적지만, 이 역시 족보 전승에 기댄 설명입니다.

조선 시대의 인물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임진왜란 때 동생 감경륜과 함께 이순신 진영에 가 공을 세운 감경인(1569~1648)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그를 회산 본관으로 소개하며, 1606년 대마도에 파견되어 포로 150여 명을 데려오는 등 전후 수습에 힘썼다고 전합니다. 동생 감경륜은 사후 군자감 직장에 추증되어 형과 함께 삼렬사에 봉안되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한 감상중(본관 합포), 1555년 생원시와 1589년 진사시에 입격한 감덕후·감경무(본관 창원)가 과거 급제자로 전합니다.

자료가 적다는 점

회산 감씨는 인구가 적고, 이번에 확인한 자료도 위키백과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도입니다. 종친회 공식 사이트와 최근 인구 통계(2015년), 파별 분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반드시 집안 족보와 종친회로 확인하세요.

주요 파(派)

파 이름과 파조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창원·합포·거창·부령·충주·창녕 감씨는 같은 뿌리의 갈라진 본관으로 소개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감규(시조로 전하는 원나라 한림원 태학사), 감철(중시조로 전하는 16세손), 감경인(임진왜란 무장·삼렬사 봉안)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인구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감씨는 모두 5,998명이었고, 이 가운데 창원 감씨 2,685명·회산 감씨 2,113명·합포 감씨 94명(합계 4,892명)이 창원 일대를 본관으로 하는 것으로 위키백과에 소개됩니다. 거창 감씨 522명, 창녕 감씨 372명, 충주 감씨 112명, 부녕 감씨 65명은 창원 감씨의 세거지 이름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위키백과 숫자를 모두 더하면 합계와 맞지 않으니 대략적인 규모만 참고하세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수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분파

알려진 파 이름과 파조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것은 파가 아니라 창원·합포·거창·부령·충주·창녕 등 갈라진 본관 이름입니다.

삼렬사

감경인은 사후 충훈부에서 '삼렬'이라는 사호를 받아 삼렬사에 봉안되었다고 합니다. 삼렬사의 정확한 위치와 현재 운영 상황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감경인의 문집으로 『삼렬당문집』이 전합니다.

항렬

위키백과에 소개된 항렬은 35세 현(鉉)·태(泰), 36세 영(泳)·식(植)·주(柱), 37세 상(相)·경(炅)·병(炳), 38세 병(炳)·규(圭)·은(垠), 39세 동(東), 40세 희(熙), 41세 채(埰), 42세 석(錫), 43세 호(浩), 44세 근(根), 45세 형(炯)입니다. 어느 파·집안에서 쓰는지, 세대 기준이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으니 반드시 우리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종친회에 대하여

종친회 이름과 연락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족보를 찾으시려면 창원 지역 문중이나 집안 어른께 먼저 문의하시길 권합니다.

감(甘)씨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으로 소개되며, 하나라의 '감' 땅, 상나라 무정의 신하 감반, 주 혜왕의 아들 숙대의 후손이라는 서로 다른 설이 전합니다. 어느 설이 맞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회산 감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회산)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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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 감씨 종친회

회산 감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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