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 임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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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 임씨(豊川 任氏) — 풍천을 본관으로 하는 임(任)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인구 — 약 143,881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해 질 녘 들판의 조선 시대 성곽과 먼 산속 절집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수묵담채화
AI로 그린 상상도 — 해 질 녘 들판의 조선 시대 성곽과 먼 산속 절집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수묵담채화

풍천 임씨란

풍천을 본관으로 하는 임(任)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풍천 임씨 인구는 약 143,88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임씨라도 본관(풍천)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풍천 임씨의 뿌리와 역사

풍천 임씨(豊川 任氏)는 2015년 인구조사에서 약 14만 4천 명으로, 맡길 임(任) 자를 쓰는 임씨 가운데 대표적인 본관입니다.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를 140명 넘게 배출했고, 성리학자와 청백리, 임진왜란의 의승장 사명대사까지 다양한 인물을 낸 명문으로 꼽힙니다.

시조와 본관의 유래

본관 풍천은 황해도에 있던 옛 고을로, 별칭은 서하(西河)입니다. 고구려의 구을현(仇乙縣)이 신라 경덕왕 때 굴현현으로, 고려 초에 풍주(豊州)로 바뀌었고, 조선 예종 1년(1469)에 안순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풍천도호부로 승격했습니다. 1909년 송화군에 합쳐졌으며, 지금은 대부분 북한 황해남도 과일군에 속합니다.

종친회는 임온(任溫)을 시조로 모십니다. 『조선씨족통보』에는 임온이 중국 소흥부 사람으로 원나라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풍천에 정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황해도에서 중시조 임주의 조부 임도(任徒)와 부친 임천유(任天裕)의 비석과 지석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중국에서 왔다는 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종친회가 전하는 세계는 시조 임온에서 가규(可珪)·비(備)·도(徒)·천유(天裕)를 거쳐 6세 임주(任澍)로 이어집니다.

임주는 고려 충렬왕 때 경상도 안찰사를 거쳐 어사대부·감문위대장군 등을 지냈고, 풍천을 관향으로 받았다고 전합니다. 풍천 임씨는 대체로 임주 대부터 한 가문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봅니다.

가문의 흐름

임주의 두 아들 대에서 가문이 크게 둘로 나뉩니다. 맏아들 임자송(任子松)은 백이정의 문인으로, 조적의 난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그 후손이 백파(부원군파)입니다. 둘째 임자순(任子順)은 민부전서·개성부사를 지냈고, 그 후손이 중파(전서공파)입니다. 중파는 다시 정승공파와 사윤공파 등으로 갈라집니다.

백파에서는 성종 때 좌리공신으로 서하군에 봉해진 임원준(任元濬)이 나왔습니다. 그의 아들 임사홍은 연산군 때 갑자사화에 깊이 관여해 비판받는 인물입니다. 임사홍의 아들 임광재와 임숭재는 각각 예종과 성종의 부마가 되었습니다. 이후 한성판윤 임열(任說)의 후손이 번성하여 이조판서 임국로, 「목동가」를 지은 임유후, 학자 임성주·임정주 형제와 그 누이인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 고종 때 우의정 임백경 등이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중파에서는 중종 때 대사헌·한성판윤·형조판서를 지낸 임유겸(任由謙)의 세 아들 임추·임권·임병이 모두 이름을 떨쳤습니다. 임추의 아들 임호신과 임보신은 청백리에 뽑혔습니다. 정유재란 때 남원부사로 남원성을 지키다 전사한 임현, 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 유정, 조선 말의 성리학자 임헌회도 중파의 인물로 전합니다.

주요 인물

세거지와 유적

본관지 풍천과 중시조 임주의 묘소는 북한 지역에 있어 지금은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임주의 묘소는 풍천 적선산 아래에 있다고 전합니다. 남한에는 경기 이천 백사면 송말리, 성남 오야동, 강원 철원 갈말읍, 충북 옥천 동이면 세산리, 충남 아산·보령, 전남 무안 몽탄면 등에 집성촌이 있습니다.

남원의 충렬사에는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임현이 다른 충신들과 함께 제향되어 있습니다. 경남 밀양 무안면에는 사명대사가 태어난 곳으로 전하는 생가지가 있습니다. 임윤지당이 활동한 원주와 임성주가 은거한 공주 녹문도 풍천 임씨의 학문 전통을 보여 주는 곳입니다.

항렬표

풍천임씨중앙종친회가 공개한 대동항렬입니다. ○ 위치는 이름에서 항렬자가 놓이는 자리입니다. ○가 앞에 있으면 항렬자가 이름의 끝 글자이고, ○가 뒤에 있으면 첫 글자입니다. 중파 사윤공파는 60세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세(世)백파중파 정승공파중파 사윤공파
25세○準(준)○準(준)○準(준)
26세○鎬(호)○鎬(호)○鎬(호)
27세○宰(재)○宰(재)○宰(재)
28세○淳(순)·公(공)○○淳(순)○公(공)·○淳(순)
29세○彬(빈)·東(동)○○彬(빈)·○植(식)○彬(빈)·○植(식)·○東(동)
30세○赫(혁)○赫(혁)·○熙(희)○赫(혁)·昌(창)○
31세○中(중)·○均(균)○中(중)·○均(균)○均(균)·東(동)○
32세○鍾(종)·○九(구)鍾(종)○·善(선)○·○九(구)○九(구)·○鍾(종)
33세○洙(수)·○源(원)·○雨(우)○源(원)·○漢(한)·○雨(우)○雨(우)·○洙(수)
34세○植(식)·○相(상)相(상)○·桂(계)○·○根(근)○相(상)·○植(식)
35세○炳(병)·○煥(환)·○熙(희)○炳(병)·○憲(헌)○炳(병)·○熙(희)·○煥(환)
36세○圭(규)·範(범)○範(범)○·孝(효)○·○圭(규)○主(주)·範(범)○
37세○鉉(현)·○鎭(진)—○鎭(진)
38세○淵(연)·○承(승)—○淵(연)·○承(승)
39세○根(근)·○稙(직)—○稙(직)·○根(근)
40세○燦(찬)·○烈(열)—○燦(찬)·○烈(열)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주요 파(派)

백파, 중파

백파 (伯派)

백파는 삼사판사(三司判事)를 지낸 임자송(任子松)을 파조로 하며 부원군파(府院君派)라고도 합니다. 임자송은 풍천 임씨가 한 가문으로 성장하는 기점으로 꼽히는 임주(任澍)의 아들입니다.

임자송의 7대손으로 명종 때 한성판윤·제학을 지낸 임열(任說)의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선조 때 이조판서 임국로(任國老), 현종 때 병조참판 임유후(任有後), 학자 임성주(任聖周), 고종 때 우의정 임백경(任百經) 등이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중파 (仲派)

중파는 민부전서(民部典書)를 지낸 임자순(任子順)을 파조로 하며 전서공파(典書公派)라고도 합니다. 임주의 아들 대에서 백파와 함께 갈라졌습니다.

임자순의 6대손 임유겸(任由謙)·임유손(任由遜) 형제의 후손이 번성하여, 병조·예조판서 임권(任權), 청백리 임호신(任虎臣)·임보신(任輔臣), 훈련대장 임태영(任泰瑛), 성리학자 임헌회(任憲晦) 등이 나왔습니다. 사명당 유정(惟政)도 임자순의 후손으로 전해집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임자송(서하부원군·백파 파조), 임원준(좌리공신·서하군), 임권(병조·예조판서), 임호신(청백리), 사명대사(유정·임진왜란 승병장), 임현(남원성 전투 순절), 임유후(목동가 작자), 임성주(성리학자·녹문), 임윤지당(여성 성리학자), 임정주(성리학자), 임헌회(성리학자·전재), 임백경(고종 때 우의정)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풍천 임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풍천)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풍천 임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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