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박씨(月城 朴氏) — 경주 월성동을 본관으로 하며, 신라 경명왕의 막내아들 월성대군 박언의를 시조로 전하는 성씨입니다. 경주 박씨와는 계보가 다른 별개의 본관으로 구분됩니다.
경주 월성동을 본관으로 하며, 신라 경명왕의 막내아들 월성대군 박언의를 시조로 전하는 성씨입니다. 경주 박씨와는 계보가 다른 별개의 본관으로 구분됩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월성 박씨 인구는 약 26,56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월성)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참의공파, 사정공파, 고암공파, 전적공파, 세마공파, 진사공파, 설봉공파, 참판공파, 현감공파, 부사공파, 송계공파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박언의(시조·월성대군으로 전함), 박휘(고려 판결사·1세 중시조), 박인육(고려 현종 때 관료), 박을규(의흥 박씨 시조)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월성 박씨(月城 朴氏)는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일대를 본관으로 하는 박씨입니다. 월성은 신라 왕궁이 있던 곳으로, 경주를 가리키는 옛 이름이기도 합니다. 문중에서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를 원시조로 받들고, 경명왕(景明王)의 여덟째(막내) 아들로 월성대군(月城大君)에 봉해졌다고 전하는 박언의(朴彦儀)를 시조로 모십니다. 다만 위키백과는 '경명왕의 아들 월성대군'이라는 이야기가 후대에 족보를 편찬하면서 정리된 전승이라고 설명하므로, 신라 왕자 시절의 사적은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실제 계보가 이어지는 시점은 고려 초입니다. 고려 혜종 때 판결사를 지냈다는 박휘(朴徽)를 1세 중시조로, 현종 때 하급 관료였다는 박인육(朴仁育)을 2세 중시조 혹은 본격 1세조로 헤아리는 자료가 있으며, 자료마다 어느 쪽을 중시조로 삼는지 표기가 엇갈립니다.
경명왕계 박씨의 본관은 흔히 '경명왕의 여덟 왕자'에서 갈라졌다고 전해집니다. 장남 밀성대군(밀양 박씨), 차남 고양대군(고령 박씨), 셋째 함양 박씨, 넷째 죽성대군(죽산 박씨), 다섯째 사벌대군(충주·상주 박씨 등), 여섯째 완산대군(무안 박씨), 일곱째 강남대군(춘천 박씨)에 이어 막내 월성대군 박언의의 후손이 월성 박씨라는 것이 나무위키 등에 정리된 전승입니다. 반남 박씨처럼 이 '여덟 왕자' 전승을 받아들이지 않는 본관도 있으므로, 이는 박씨 전체의 공인된 계보가 아니라 일부 본관에서 전하는 설로 이해해야 합니다.
경주 박씨와는 서로 다른 본관입니다. 경주 박씨는 신라 파사 이사금의 후손으로 38세손 박상(초명 박앙)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고(경주 박씨 보기), 월성 박씨는 경명왕계 월성대군 박언의의 계통입니다. 같은 경주를 가리키는 지명이라 옛 자료나 일상 표현에서 '경주 박씨'와 '월성 박씨'가 섞여 쓰이기도 했으나, 현재 통계와 족보는 두 본관을 별도로 구분합니다. 일부 글에서는 경주 박씨를 '월성 박씨라고도 한다'고 적기도 하는데, 이는 옛 혼용의 흔적으로 보이며 현행 구분과는 다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월성 박씨는 1985년 5,120가구 20,506명, 2000년 7,251가구 22,917명,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26,565명으로 집계됩니다. 별도의 세거지 설명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며, 본관지인 경주를 중심으로 영남에 많이 거주할 것으로 짐작될 뿐입니다.
의흥 박씨(義興 朴氏)는 월성 박씨에서 갈라져 나온 본관으로 전해집니다. 시조 박을규(朴乙規)는 본래 해주 왕씨로 고려 말 병부상서를 지냈는데, 고려가 망한 뒤 박해를 피해 경상도 의흥(현 군위군)에 숨어 살다 1401년(태종 1) 외가의 성인 월성 박씨를 따라 이름을 왕을규에서 박을규로 바꾸고 의흥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후손 가운데 조선 문관 박수검(1629~1698)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월성박씨대동세보》에 따라 참의공파·사정공파·고암공파·전적공파·세마공파·진사공파·설봉공파·참판공파·현감공파·부사공파·송계공파 등 30여 개 파가 정리되어 있다고 위키백과는 전합니다. 다만 각 파조의 이름과 세대, 계통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이 사이트에서는 파별 카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속한 파는 문중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월성 박씨는 본(本) 항렬로 59세~74세에 해당하는 돌림자를 두고 있으며, 조(祚)·두(斗)·현(鉉)·영(永)·해(海)·상(相)·근(根)·희(熙)·병(炳)·재(在)·배(培)·진(鎭)·호(鎬)·태(泰)·연(淵)·주(柱)·식(植) 등의 글자가 오행(木·火·土·金·水)을 따라 돌아가며 쓰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다만 세대별 정확한 대응표는 공개 자료에서 판독하기 어려웠습니다.
위키백과 월성 박씨 항목에는 박철준이 주요 인물로 링크되어 있으나 상세 설명은 없습니다. 이 외에 대표 인물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의흥 박씨의 박수검은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월성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월성 박씨 족보·가계도 정보 추가/수정 요청하기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