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자 裵貞子

일본의 정보원으로 활동한 친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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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870년 ~ 1952년
시대대한제국·일제강점기
본관분성 배씨(김해 배씨로도 표기)

생애 약력

배정자(裵貞子, 1870~1952)는 대한제국 말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위해 정보 활동을 한 인물로, 역사 평가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분류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본명은 배분남이고 경남 김해 출신입니다. 아버지가 흥선대원군 실각 뒤 처형되고 어머니와 함께 연좌되어 어린 시절 어렵게 지냈으며, 1882년 출가했다가 188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되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같은 위키백과는 일본 쪽 사료에는 기록이 없고 한국 쪽에서만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밝힙니다. 이후 1894년 귀국해 고종 곁에서 정치 정보를 일본 쪽에 전했다고 전해지며, 1920년대에는 만주·시베리아·간도·상하이 등지에서 독립운동 세력을 겨냥한 활동을 하다 1927년 은퇴했다고 합니다. 태평양전쟁 중에는 여성들을 '군인위문대'라는 이름으로 모아 남양군도로 보내는 일에 관여했다고 서술됩니다.

광복 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어 반민법으로 가장 먼저 구속된 인물이 되었으나, 특위가 해산되면서 풀려났습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이 글은 사실 서술에 그치며 특정한 평가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본관은 위키백과의 배정자 문서에 '김해'로 적혀 있고, 분성 배씨 문서의 인물 목록에는 분성 배씨로 올라 있습니다. 분성은 김해의 옛 이름이지만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는 분성 배씨와 김해 배씨가 따로 집계되어 계통이 같은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료를 읽을 때의 유의점

배정자의 생애는 한국 쪽 기록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 위키백과도 '이를 입증할 사료는 없다'고 단서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 설과 같은 이야기는 정설로 다루지 않았고, 서울신문 1998년 연재는 생몰년을 1870~1952년으로, 일부 영어권 정리는 1870~1950년으로 적어 사망 연도도 자료마다 다릅니다.

묘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배정자 자주 묻는 질문

배정자는 왜 친일 인물로 분류됩니까?

일본의 정보원으로 독립운동 세력을 겨냥한 활동을 했다고 전해지며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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