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시 박씨(本溪 朴氏) — 중국 랴오닝성 번시(본계)에 사는 조선족 박씨로, 박영강을 시조로 하며 1619년 사르후 전투 때 강홍립 휘하 조선군의 후예라는 전승이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랴오닝성 번시(본계)에 사는 조선족 박씨로, 박영강을 시조로 하며 1619년 사르후 전투 때 강홍립 휘하 조선군의 후예라는 전승이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번시 박씨 인구는 약 7,000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번시)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번시 박씨는 대(代)가 내려오며 여러 계파(파)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는 보유하신 족보나 문중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파와 항렬의 개념은 본관·파·항렬 가이드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영강(시조)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번시 박씨(本溪 朴氏, 중국어 발음 번시·본계)는 중국 랴오닝성 번시(本溪)시 일대에 사는 조선족 박씨로, 본관은 거주지 번시에서 따온 것입니다. 시조는 박영강(朴英强)이며, 후손들은 조상이 명·청 교체기에 만주로 건너온 조선인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1619년 사르후(부차) 전투 뒤 후금에 사로잡힌 강홍립 휘하 조선군 병사들이 번시 일대에 정착한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전해집니다.
이 본관은 한반도의 지명에서 나온 일반적인 본관과 달리 중국에서의 정착지를 따른 것으로, 어느 왕계나 대군 계열에 속한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번시 박씨 협회 사무실에는 박씨의 전통적 시조 박혁거세의 초상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청대 지방지에 따르면 1659년에 박영강을 포함한 박씨 5형제에게 땅이 나뉘었다고 하며, 1786년 영녕사(永寧寺)의 종에는 시주자로 「박가보자촌(朴家堡子村)」이 새겨져 있어 그 무렵 마을이 이미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줍니다. 민족 구분은 청대에는 만주족(기인)으로, 1958년 인구조사에서는 한족으로 분류되었다가, 1982년 인구조사 때 주민들이 집단으로 청원하여 조선족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06년 박명겸을 회장으로 번시박씨협회가 만들어졌고, 후손 약 7,000명을 파악하여 족보를 완성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도 항렬자를 쓰며 문(文)-명(明)-희(希)-승 순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인물로는 시조 박영강 외에 마을 어른으로 박문만, 박명구 등이 거론됩니다.
인구는 협회 추산 약 7,000명이며 통계청 조사 대상이 아닙니다. 사료와 원문 지방지 근거는 위키백과 요약에 의존하므로, 자세한 내용은 협회와 현지 자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번시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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