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성씨(昌寧 成氏) — 창녕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창녕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창녕 성씨 인구는 약 182,377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성씨라도 본관(창녕)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판서공파는 시조 성인보의 6세인 성기(成紀)를 파조로 합니다. 창녕 성씨는 3세 성공필·성한필 형제 대에 크게 두 계통으로 갈라진 뒤 6세에 이르러 13개 파로 나뉘었는데, 판서공파는 그 첫머리에 꼽히는 파입니다.
분파도에 따르면 성기는 성공필의 손자 성한충(成漢忠)의 아들로, 독곡·회곡·상곡공파의 파조들과 같은 6세 항렬에 해당합니다.
독곡공파는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 1338~1423)을 파조로 하며, 시호를 따서 문경공파(文景公派)라고도 합니다. 성석린은 창녕부원군 성여완의 맏아들로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급제하였습니다.
양광도 관찰사 시절 의창을 설치해 흉년을 구제한 일로 알려졌으며,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공신에 책록되고 태종 때 창녕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15년(태종 15)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회곡공파는 회곡(檜谷) 성석용(成石瑢, 1352~1403)을 파조로 하며, 문숙공파(文肅公派)라고도 합니다. 성석용은 성여완의 둘째 아들로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였고, 조선 개국 후 대사헌·개성유후 등을 지냈습니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이 성석용의 증손으로 이 파에 속합니다. 성석용의 손자 성희(成熺)는 단종 복위 모의에 연루되어 유배된 뒤 지금의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에 정착하였고, 그 아들 성담수는 생육신으로 꼽힙니다.
상곡공파는 상곡(桑谷) 성석인(成石因, ?~1414)을 파조로 하며, 시호를 따서 정평공파(靖平公派)라고도 합니다. 성석인은 성여완의 셋째 아들로 초명은 성석연(成石珚)이며, 1377년(우왕 3)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습니다.
조선에서 대사헌·예문관 대제학과 형조·호조·예조판서 등을 지냈습니다. 손자 성봉조는 우의정, 증손 성준은 영의정에 올랐고, 『용재총화』를 지은 성현과 학자 성혼(成渾)도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정절공파는 고려 말의 충신 정절공(貞節公) 성사제(成思齊)를 파조로 합니다. 성사제는 공양왕 때 보문각 직제학을 지냈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경상남도 창녕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창녕 성사제 신도비」(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가 있고, 그의 행장 등을 새긴 「두문동선생실기 목판」도 전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성삼문, 성현, 성혼, 성희안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성인보~성삼문·성현·성혼창녕 성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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