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우씨(丹陽 禹氏) — 단양을 본관으로 하는 우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단양을 본관으로 하는 우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단양 우씨 인구는 약 191,287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우씨라도 본관(단양)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대제학공파, 예안군파, 안정공파, 집의공파, 판서공파, 정평공파, 문숙공파
대제학공파는 우홍수(禹洪壽, 1355~1392)를 파조로 합니다. 우홍수는 단양부원군 우현보(禹玄寶)의 맏아들로, 1377년 문과에 급제한 뒤 지신사·대사헌을 거쳐 첨서밀직사사·동지밀직사사를 지냈습니다.
1392년 정몽주 일파로 몰려 파면되었고, 조선 개국 뒤 전라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장형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안군파는 예안군(禮安君) 우홍부(禹洪富)를 파조로 합니다. 우홍부는 고려 말 판삼사사를 지내고 단양부원군에 봉해진 우현보의 아들로, 형제인 우홍수·우홍강·우홍득·우홍명과 함께 단양 우씨의 주요 파를 이룹니다.
안정공파는 우현보의 아들 우홍강(禹洪康, 1357~1423)을 파조로 합니다. 우홍강은 1378년 과거에 합격해 고려에서 정언·안렴사 등을 지냈고, 조선 건국 뒤 좌사간, 충주·청주 목사, 예조·이조 참의를 거쳐 한성부윤과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습니다.
1421년 개성 유후에 올랐으며, 시호는 안정(安靖)입니다.
집의공파는 우현보의 셋째 아들 우홍득(禹洪得)을 파조로 합니다. 조선 개국 무렵 고려 유신들을 처벌할 때 강원도로 유배되었다가 형 우홍수, 아우 우홍명과 함께 매를 맞아 죽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판서공파는 우현보의 막내아들 우홍명(禹洪命)을 파조로 합니다. 조선 개국 뒤 전라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형 우홍수와 함께 화를 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평공파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우인열(禹仁烈, 1337~1403)을 파조로 합니다. 우인열은 시조 우현의 10세손으로,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문하찬성사에 이르렀습니다.
1377년 이후 경상도 원수와 삼도도체찰사 등으로 왜구 토벌에 활약했으며, 조선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고 판삼사사를 거쳐 검교좌정승에 올랐습니다. 시호는 정평(靖平)입니다.
문숙공파는 조선 초기 문신 우희열(禹希烈, 1354~1420)을 파조로 합니다. 우희열은 우복생(禹福生)의 둘째 아들로, 태종 때 호조전서와 원주목사를 거쳐 충청도·경기도 관찰사, 광주·청주 목사를 지냈습니다.
부임지마다 제언 수축 등 농상과 수리에서 치적을 남겼으며, 세종이 사후에 그 공을 칭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우탁, 우현보, 우장춘, 우상호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단양 우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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