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박씨(固城 朴氏) — 고려의 박서를 시조로 하며, 죽산 박씨에서 갈라져 옛 지명 철성을 따라 철성 박씨라고도 불리는 본관입니다.
고려의 박서를 시조로 하며, 죽산 박씨에서 갈라져 옛 지명 철성을 따라 철성 박씨라고도 불리는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고성 박씨 인구는 약 5,130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고성)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고성 박씨는 대(代)가 내려오며 여러 계파(파)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는 보유하신 족보나 문중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파와 항렬의 개념은 본관·파·항렬 가이드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서(시조·고려 무신, 몽골군 격퇴), 박혁충(박서의 현손·철성부원군에 봉해졌다고 전함), 박보로(고려 말 왜구 격퇴 장수로 전함)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고성 박씨는 경상남도 고성군을 본관으로 하며 철성 박씨라고도 합니다. 철성은 고성의 옛 지명입니다. 시조 박서(朴犀)는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 죽성대군 박언립의 11세손으로 전하며, 1231년(고종 18) 서북면병마사로서 몽골 장수 살리타이의 침입에 맞서 귀주성을 지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서의 현손 박혁충은 이조전서·한림원시강·태자첨사를 지냈는데, 박서의 행장과 사적을 조정에 올려 그 공이 인정되면서 박서가 평장사에 추증되고 철성백에 추봉되었으며 박혁충 자신은 철성부원군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후손들은 죽산 박씨에서 갈라져 나와 고성(철성)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고성 박씨는 죽성대군(박언립) 계통의 죽산 박씨에서 분적한 본관으로 소개되며, 음성 박씨와 함께 박서를 공동 시조로 모십니다. 대군 계통은 족보의 전승에 따른 설명입니다.
1839년(헌종 5) 일부 후손이 죽산 박씨로의 복관을 청원해 받아들여졌다고 전하며, 이때 돌아가지 않은 후손은 지금도 고성 박씨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통계청 조사에서 고성 박씨는 2000년 3,911명, 2015년 5,130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본관지인 경남 고성군 하이면 일대가 죽산 박씨 집성촌으로도 소개되는 등, 고성 일대에 세거해 왔다고 전합니다. 그 밖의 집성촌과 종친회 정보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조 박서의 사적은 박서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려 말 왜구를 여러 차례 물리친 장수로 전하는 박보로가 고성 박씨 쪽 인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일부 자료는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철성군에 봉해진 박식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정유재란 중 고성 앞바다에서 순절했다는 박애상도 고성 박씨 인물로 소개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교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별도의 파 구분과 종친회 홈페이지, 항렬은 공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죽산 박씨 철성백파와의 관계는 박서 및 죽산 박씨 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성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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