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박씨 족보·가계도

우리집안 온라인 족보 만들기

무안 박씨(務安 朴氏) — 신라 경명왕계 후손으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박진승을 시조로 전하는 본관입니다.

인구 — 약 90,785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붉은 황토 언덕과 넓은 갯벌을 낀 서남해안 무안 마을과 문중 사당을 멀리서 바라본 수묵담채풍 그림
AI로 그린 상상도 — 붉은 황토 언덕과 넓은 갯벌을 낀 서남해안 무안 마을과 문중 사당을 멀리서 바라본 수묵담채풍 그림

무안 박씨란

신라 경명왕계 후손으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박진승을 시조로 전하는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무안 박씨 인구는 약 90,78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무안)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무안 박씨의 뿌리와 역사

시조와 본관의 유래

무안 박씨(務安 朴氏)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원조로 하는 박씨의 한 갈래로, 지금의 전라남도 무안군을 본관으로 합니다. 시조 박진승(朴進昇)은 신라 경명왕의 아들 완산대군의 5세손으로 전합니다. 그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해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지냈고, 나라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받고 무안군(務安君)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이에 후손들이 무안을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본관지 무안은 백제의 물아혜군(勿阿兮郡)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 무안군이 되었습니다. 고려 때 물량군을 거쳐 다시 무안이 되었고, 1413년(태종 13) 무안현이 되어 조선 시대 내내 이어졌습니다. 옛 이름으로 면성(綿城)이 있어, 박진승을 시조로 하는 계통을 면성 박씨로 일컫기도 합니다.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무안 박씨 90,785명과 면성 박씨 7,666명이 따로 집계되어 있고, 두 본관의 족보를 합쳐 흔히 무안 박씨로 통칭합니다. 다만 가족관계부에서는 두 본관이 구분되어 기록되므로, 집안 기록에 「면성」으로 되어 있어도 이 페이지의 무안 박씨와 같은 계통일 가능성이 큽니다. 두 수치를 합치면 약 98,451명이 됩니다. (참고: 위키백과 면천 박씨 문서는 같은 7,666명을 면천 박씨 쪽에 합산해 적고 있어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가문의 흐름

고려 전기에 무안 박씨는 중앙 관료 가문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2세 박섬(朴暹)은 1010년(현종 1)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피난하는 현종을 나주까지 모셨고, 상서우복야에 이르렀습니다. 1052년(문종 6)에는 그 공으로 공신각에 초상이 그려졌습니다. 박섬의 증손 박승중은 『해동비록』 편찬과 『예종실록』 편수에 참여한 문신입니다. 그는 이자겸이 몰락한 뒤 울진으로 유배되었다가 무안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 초 단종 복위 사건은 무안 박씨의 흐름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14세 박임경은 사육신 성삼문의 사위로, 사건 뒤 장인의 시신을 거두었다고 전합니다. 그 아들 암천 박증은 벼슬을 마다하고 노성(지금의 논산 상월면)에 은거해 노성파를 이루었습니다. 같은 14세 박익경은 무안 고절리에 숨어 살아 무안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15세기 후반에는 박지몽이 경상도 영해에 정착해 영해파를 열었고, 그 증손 박의장·박홍장 형제가 임진왜란에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호남에서는 박종정 계통의 해남파와 진도·영암의 후손이 세거했습니다. 이 밖에도 개성파·한산파·장단파·지평파·함양파·적성파·음죽파·양주파·공주파·홍산파와 당진의 다섯 파 등 많은 파가 전합니다.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는 22명으로 집계됩니다.

근현대에는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만든 박두성이 시각장애인 교육의 길을 열었습니다. 다산 연구가 박석무도 무안 박씨입니다. 세거지는 무안군 청계면·현경면, 나주 동강면, 진도 지산면, 해남 마산면 등 전남 서남부에 많습니다. 충남 논산 상월면·당진, 경북 영덕 영해면·축산면과 영양·봉화, 경기 양평·이천, 강원 홍천 등지에도 집성촌이 있습니다.

주요 인물

세거지와 유적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주요 파(派)

노성파, 영해파, 해남파, 무안파

노성파 (魯城派)

노성파는 암천 박증(朴增, 1461~1517)을 파조로 합니다. 그의 아버지 박임경은 사육신 성삼문의 사위로, 사육신 사건 뒤 장인의 시신을 거두어 묻었다고 전합니다. 박증은 외조부의 충절을 기려 벼슬에 나가지 않고 1492년 노성 동쪽 암천에 은거하였고, 그 후손이 지금의 논산시 상월면 일대에 세거했습니다.

박증의 유허지에는 보인당이 세워지고 모곡서원이 창건되었으며, 아우 박호(朴壕, 1466~1533)는 무안 박씨 가운데 조선 시대 처음으로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전합니다.

영해파 (寧海派)

영해파는 시조 박진승의 14세손 박지몽(朴之蒙, 1445~?)을 중심으로 한 파입니다. 박지몽은 1470년 무렵 영덕현령으로 부임한 백부 박이를 따라왔다가 영덕 박씨 박종문의 딸과 혼인해 인량리에 정착했으며, 오위의 부사직을 지냈습니다.

그의 증손 박의장(朴毅長)은 임진왜란 때 경주성 탈환에 공을 세워 무의(武毅)라는 시호를 받았고, 아우 박홍장(朴弘長)과 함께 구봉서원에 제향되었습니다. 후손은 영해면 원구리, 축산면 도곡리, 창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해남파 (海南派)

해남파는 박종정을 파조로 하는 파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진도의 무안 박씨 자료에 따르면, 시조의 15세손 박희정(朴希貞, 1460~1560)이 1505년 무렵 영암군수로 있던 형 박종정을 따라왔다가 진도 고군면 하율리에 터를 잡았다고 전합니다.

무안파 (務安派)

무안파는 14세 박익경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박익경은 박의룡의 5대손으로, 1456년 사육신 사건 뒤 무안 고절리에 은둔했다고 전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박진승(무안 박씨 시조·국자좨주), 박섬(현종 호종공신·상서우복야), 박승중(고려 문신), 박익경(무안파 파조), 박증(노성파 파조·절의의 선비), 박지몽(영해파 입향조), 박의장(임진왜란 경주성 탈환), 박홍장(1596년 통신사 부사), 박두성(한글 점자 훈맹정음 창안자), 박석무(다산 연구가·제13·14대 국회의원)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영상

한국의 성씨 10회 밀양 박씨

우리 무안 박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무안)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무안 박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함께 보면 좋은 글

가계도 무료로 그리는 법온라인 족보 만들기 단계별 가이드 본관·파·항렬 완벽 정리뜻과 세대 정리법

무안 박씨 종친회

무안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무안 박씨 족보·가계도 정보 추가/수정 요청하기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