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박씨(平澤 朴氏) —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사벌대군 박언창의 후예라고 전하나 상계가 실전되어, 박지영을 중시조로 삼는 본관입니다.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사벌대군 박언창의 후예라고 전하나 상계가 실전되어, 박지영을 중시조로 삼는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평택 박씨 인구는 약 629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평택)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평택 박씨는 대(代)가 내려오며 여러 계파(파)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는 보유하신 족보나 문중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파와 항렬의 개념은 본관·파·항렬 가이드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지영(중시조·조선 초 평택현감으로 전함), 박산(형조참판·단종 복위 사건 연루로 전함)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평택 박씨는 경기도 평택을 본관으로 하며,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사벌대군 언창(彦昌)의 후예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상계가 실전되어 정확한 계대를 알 수 없다고 하며, 조선 초 평택현감(자료에 따라 평택현사)을 지낸 박지영(朴之永)부터 기일세(起一世)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고 합니다.
박언창은 경명왕의 여덟 왕자 중 다섯째로, 상주 박씨의 시조로도 모셔집니다. 위키백과 상주 박씨 문서는 박지영이 상주 박씨에서 평택 박씨로 분관했다고 적고 있지만, 평택 쪽 소개 자료는 상계가 전하지 않는다고만 하므로 연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대군 계통은 어디까지나 전승입니다.
지영의 아들 박산은 형조참판을 지냈고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된 뒤, 후손들이 선조의 임지였던 평택을 관적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일부 자료는 그가 함경북도로 유배되어 정착한 것으로 서술해 서술이 엇갈립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평택 박씨는 전국 202가구 629명이었고 평택시에는 3가구 18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2015년 수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은 함경북도 무산군 등 북부 지방에 많이 분포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문중 소개 자료에는 박준검(사과), 박인규(온성진 관권), 박규능(1886년 정시 문과 급제, 유일한 문과 급제자로 소개) 등이 올라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크게 현달한 인물이 드문 소규모 본관입니다.
별도의 파 구분과 종친회 홈페이지, 항렬 정보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규모가 작은 본관이므로 정확한 계보는 족보와 문중 기록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평택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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