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이씨(星州 李氏) — 시조는 신라 말 재상을 지낸 이순유로 전해지며, 고려 말 문신 이조년 등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조는 신라 말 재상을 지낸 이순유로 전해지며, 고려 말 문신 이조년 등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성주 이씨 인구는 약 203,703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이씨라도 본관(성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밀직공파는 중시조 이장경(李長庚)의 맏아들 이백년(李百年)을 파조로 합니다. 이백년은 1285년(충렬왕 11) 과거에 급제하여 밀직사(密直司)의 관직에 올랐습니다.
아우 이억년과 함께 경상도 함양으로 옮겨 만년을 보냈다고 전합니다. 성주에는 주로 이백년과 이조년의 후손이 세거지를 이루고 있으며, 고령에도 밀직공파 이석견(李碩堅)의 후손이 많이 삽니다.
참지공파는 이장경의 둘째 아들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이천년(李千年)을 파조로 합니다.
이장경의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현달하면서 성주 이씨가 크게 번창했으며, 이천년의 둘째 아들 이승경(李承慶)은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중공파는 이장경의 셋째 아들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이만년(李萬年)을 파조로 합니다.
경상북도 김천의 조마면 신곡리와 부항면 지좌리 등에 이 파의 세거지가 있습니다.
유수공파는 이장경의 넷째 아들로 개성유수(開城留守)를 지낸 이억년(李億年)을 파조로 합니다.
이억년은 형 이백년과 함께 함양으로 옮겨 살았다고 전하며, 함양에는 두 형제가 학문을 닦았다는 도정정사 터가 전합니다.
문열공파는 이장경의 다섯째 아들로 정당문학을 지내고 문열(文烈)이라는 시호를 받은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을 파조로 합니다. 이조년은 고려 충렬왕부터 충혜왕 대에 걸쳐 활동한 문신입니다.
그의 손자로 이포의 아들인 이인복(李仁復)과 그 아우로 고려 말 권세를 잡은 이인임(李仁任)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성주와 고령, 김천 등지에 후손이 세거하고 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이조년(고려 문신), 이인임(고려 권신), 이숭인(고려 말 삼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이순유~이장경 5형제·이조년·이인임·도은 이숭인다른 파·문중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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