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 박씨(泰仁 朴氏) — 전북 정읍 태인(옛 태산)을 본관으로 하며, 밀양 박씨 돈재공파와 이어지는 계통으로 전해지는 박씨입니다.
전북 정읍 태인(옛 태산)을 본관으로 하며, 밀양 박씨 돈재공파와 이어지는 계통으로 전해지는 박씨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태인 박씨 인구는 약 1,01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태인)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정혜공파는 청백리로 이름난 박수량(朴守良, 1491~1554)을 파조로 합니다. 시호가 정혜(貞惠)이며, 전남 장성 황룡면 일대가 세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수량의 묘 앞에는 글자를 새기지 않은 '백비'가 있어 전남 기념물 제198호로 지정되었고, 모암서원과 수산사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전합니다.
매헌공파는 박행중(朴行中, 1641~1689)을 파조로 합니다. 송시열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1687년 최초의 태인 박씨 족보를 수보했다고 전해집니다. 파조의 한자 표기는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백우당파는 박상의(朴尙義, 1538~1621)를 파조로 합니다. 선조·광해군 때 왕릉과 궁궐 터 선정에 관여한 풍수지리가로 소개됩니다. 한자 표기는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추정이므로 족보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박윤화(고려 문과 급제자), 박수량(청백리·정혜공파 파조), 박상의(풍수지리가), 박행중(매헌공파 파조), 박권상(언론인·전 KBS 사장)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태인 박씨(泰仁 朴氏)의 본관 태인은 '태산'과 '인의' 두 고을이 합쳐진 이름으로, 태종 9년(1409) 두 고을을 합치면서 태인이라 했고 치소는 거산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세종실록지리지》가 태산 지역의 토성으로 박씨를 적고 있어 박씨의 본거지는 인의가 아니라 태산이었던 것으로 설명됩니다. 1290년 문과 급제자 박윤화가 '본태산(本泰山)'으로 기록된 것이 태산 본관을 쓴 이른 사례로 제시됩니다. 그래서 태산 박씨라고도 부릅니다.
나무위키는 원시조를 박혁거세, 원조를 밀성대군 박언침, 중조를 박언상(족보상 도평의사·밀직군)으로 소개하며, 돈재공파의 파시조 박연생(단종 대 대호군)을 기세조로 소개합니다. 박현손을 중시조로 보는 서술도 있습니다. 다만 태산 박씨의 고려 시대 기록과 족보 계보 사이의 연결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박거인을 입향 1세로 두는 계통도 함께 소개됩니다.
문중 전승에 따르면 박연생은 계유정난과 세조의 즉위에 항거해 은거하면서 본관을 밀성에서 태인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1741년 밀성박씨대동보 수보에 태인 박씨가 포함되면서 밀양 본관을 쓰는 이들이 생겼고, 1831년 박규혁 등이 예조에 밀양 복관을 청원했으며, 1850년 홍직필의 자문을 받아 대부분의 일족이 밀양으로 환관하고 일부는 태인 본관을 유지해 종론이 둘로 나뉘었다고 전해집니다. 돈재공파 종중은 밀양으로 본관을 바꾼 후손을 3만여 명 이상으로 추산합니다. 이는 문중 전승에 근거한 내용이며 공식 판정은 아니라고 소개됩니다. 일부 자료는 태인 박씨를 '밀양 박씨 도평의사공파 돈재공파'라고도 합니다.
국가통계포털 2015년 성씨 통계 기준 태인 박씨 963명, 태산 박씨 49명으로 합계 1,012명입니다(나무위키 '박(성씨)' 항목은 2015년 6,567명으로 적어 자료 간 차이가 있습니다). 본관지는 전북 정읍시 태인면이며,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관동리(소곡 일대), 광주 광산구 하남동, 나주시 다시면·노안면·문평면, 영광군 염산면, 고창군 해리면·신림면, 부안군 하서면, 경북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등에 세거해 왔다고 합니다.
나무위키는 정혜공파(파조 박수량), 목우당파(박수공), 백우당파(박상의), 눌헌공파(박상지), 매헌공파(박행중), 습득공파(박사침)를 소개합니다. 매헌공파 박행중(1641~1689)은 송시열의 문인으로, 1687년 최초의 태인 박씨 족보를 수보했다고 합니다.
고려의 박윤화는 1290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조선의 박수량(1491~1554)은 1514년 문과에 급제해 우참찬에 올랐고 두 차례 청백리로 뽑혔으며, 장성의 '백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박상의(1538~1621)는 선조·광해군 때 왕릉과 궁궐 터 선정에 관여한 풍수지리가로 소개됩니다.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박조의 아내 임씨, 1513년 단지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진 박윤근 등도 알려져 있습니다. 근현대에는 독립유공자 박은용(1880~1949)과 언론인 박권상(1929~2014)이 소개되며, 금호아시아나그룹 일가(범금호가)가 태인 박씨 계통이라는 서술이 있으나 위키백과의 박인천 문서는 본관을 밀양 박씨로 적어 본관 표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문과 급제자는 고려 1명, 조선 2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인 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 밀성대군 박언침의 후손으로 전해지며 밀양 박씨의 한 갈래와 얽혀 있습니다. 8대군 분봉은 박씨 족보에 전하는 전승이며 일부 본관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종친회의 별도 명칭과 항렬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태인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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