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흥 박씨(義興 朴氏) — 개성 왕씨 출신 박을규가 조선 건국 후 외가의 성인 박씨를 따르며 의흥(군위)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하는 박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성 왕씨 출신 박을규가 조선 건국 후 외가의 성인 박씨를 따르며 의흥(군위)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하는 박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의흥 박씨 인구는 약 7,948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의흥)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제천파, 청풍파, 행정공파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박을규(시조·고려 병부상서), 박득서(중시조), 박수검(제천 입향조), 박근(세조 좌익공신)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의흥 박씨(義興 朴氏)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을 본관으로 합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시조 박을규(朴乙規)는 본래 고려 왕실의 개성 왕씨 출신으로, 고려 말 병부상서를 지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고 왕씨에 대한 박해가 이어지자 화를 피해 충북 단양 춘성 거의동에 숨어 지냈고, 태종 때 외가의 성인 박씨를 따르면서 후손들이 의흥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원시조는 고려 태조로 표기됩니다.
중간 세계가 실전되어 손자뻘인 3세 박득서(朴得瑞)부터 계대를 잇는 것으로 전하며, 박득서를 중시조로 표기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시조의 성이 문헌에 따라 박을규와 왕을규로 달리 적혀 있고, 이는 가문 전승이므로 사료로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의흥 박씨는 신라 박혁거세 계통의 박씨가 아니라, 왕씨가 박씨로 성을 바꾸었다고 전하는 드문 사례입니다. 따라서 경명왕 8대군 계열이나 파사 이사금 계통과는 무관하게 소개됩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7,948명입니다. 본관지는 군위군 의흥면이지만, 조선 중기에 임호(林湖) 박수검의 후손이 자리 잡은 충북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일대가 대표적인 집성촌이었고, 이후 제천 송학·청풍·구룡리 등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1964년 조사에서 제천 금성면에 98세대, 1977년 제천군에 2,713명, 2000년 제천시에 180가구 547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소개됩니다.
제천파, 청풍파, 행정공파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파조의 이름과 근거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파 카드는 두지 않았습니다. 입향조로는 박수검(朴守儉)의 후손이 언급됩니다.
나무위키는 세조 때 좌익공신에 책록된 박근을 대표 인물로 들고 있습니다. 또 박승종을 중종 때 인물로 적었으나, 광해군 때 영의정 박승종(1562~1623)은 다른 본관 계열로 알려져 있어 혼동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별 인물은 공개 자료로 검증하지 못해 인물 페이지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의흥박씨종친회가 있는 것으로 소개되나, 이 조사에서 공식 주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의흥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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