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남씨(宜寧 南氏) — 의령을 본관으로 하는 남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의령을 본관으로 하는 남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의령 남씨 인구는 약 162,729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남씨라도 본관(의령)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충간공파는 조선 초의 문신 충간공 남지(南智)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파입니다. 남지는 개국공신 영의정 남재(南在)의 손자이자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의 아들로, 호조판서·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습니다.
계유정난 때 사돈인 안평대군 일가가 화를 입었으나 병으로 화를 면하였으며, 사후 1489년 손자 남흔(南炘)의 상소로 충간(忠簡)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의산위공파는 태종의 부마 남휘(南暉)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파입니다. 남휘는 남경문의 아들로,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와 혼인하여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고 동지총제·판한성부사 등을 지냈으며 시호는 소간(昭簡)입니다.
병조판서를 지낸 무신 남이(南怡, 1441~1468)가 그의 손자입니다.
강무공파는 조선 개국공신 남은(南誾, 1354~1398)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파로, 그의 시호 강무(剛武)를 파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남은은 검교시중 남을번(南乙蕃)의 아들이자 영의정 남재의 아우로, 정도전 등과 함께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 1등에 올랐습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죽임을 당했으나, 세종 때 영의정에 추증되고 의성부원군으로 추봉되었으며 태조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남재, 남이, 남구만, 남경필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의령 남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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