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 허씨(陽川 許氏) — 양천을 본관으로 하는 허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양천을 본관으로 하는 허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양천 허씨 인구는 약 149,50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허씨라도 본관(양천)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동주사공파는 고려 충렬왕 묘정 배향공신인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의 맏아들 허정(許程)을 파조로 합니다. 허정은 동주(東州, 지금의 철원 일대)를 다스리는 동주사를 지냈습니다. 양천 허씨는 10세인 허공의 아들 대(11세)에서 세 개의 대파로 나뉘었습니다.
허정의 증손 허호(許灝) 무렵부터 후손들이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 일대에 집성 세거하였고, 조선 전기 이후 단양·영주·예천·안동·밀양 등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광혜원면 금곡리에 이 파의 묘역과 재실 진경재(鎭敬齋)가 있습니다.
판도좌랑공파는 허공의 셋째 아들로 판도좌랑(版圖佐郞)을 지낸 허관(許冠)을 파조로 합니다.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오늘날 양천 허씨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시대 양천 허씨의 정승과 판서는 모두 이 파 매헌공 허기(許愭)의 후손에서 나왔습니다.
형제 정승 허종·허침, 좌의정 허욱, 남인의 영수 미수 허목, 영의정 허적,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 그리고 허엽과 그 자녀 허성·허봉·허균·허난설헌이 모두 이 파의 후손입니다. 하위에 충정공파·문정공파·자산공파 등 10개 지파가 있습니다.
대제학공파는 허공의 다섯째 아들 허부(許富)를 파조로 합니다. 허부는 고려 충숙왕 때 우대언을 거쳐 선부전서(選部典書)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두 파의 후손들이 고려 말 조선 초에 진천·장단·연천 등지로 옮겨 간 것과 달리, 이 파의 후손들은 양천 허씨의 발상지인 공암(지금의 서울 강서구 등촌동 일대의 허상곡)을 중심으로 1500년대까지 세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위에 이천공파·양안공파·양천군파 등이 있으며, 양안공 허형손의 후손이 가장 번성하였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허준, 허목, 허균, 허난설헌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허황옥 → 김해·양천·태인·하양 허씨 시조 · 인천 이씨 이자연·이자겸양천 허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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