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계비, 영창대군과 정명공주의 어머니, 서궁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복권

| 생몰 | 1584 ~ 163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연안 김씨 |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1584~1632)는 조선 선조의 계비로 본관은 연안입니다. 연안부원군 김제남과 광산부부인 광주 노씨의 둘째 딸로 태어났고, 1602년 의인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1603년 정명공주를, 1606년 영창대군을 낳았습니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언문교지를 내려 광해군의 계승을 공고히 했고 왕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613년 계축옥사로 아버지 김제남이 사사되고 아들 영창대군이 살해되었으며, 오빠와 남동생, 형부까지 처형되는 멸문의 화를 입었습니다. 이후 딸 정명공주와 함께 경운궁 석어당에 유폐되었고, 폐모론 끝에 대비의 칭호를 박탈당해 '서궁'으로 불렸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어 인조의 즉위를 대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했고, 이듬해 대왕대비로 진봉되었습니다. 1632년 세상을 떠났으며, 정식 시호는 소성정의명렬광숙장정정숙인목왕후입니다. 서궁 유폐 생활은 궁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계축일기』에 전하며, 금강산 유점사에는 그가 직접 쓴 『보문경』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는 보물 제62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인목왕후는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1602년 열아홉 살 무렵 왕비로 책봉되었다고 전합니다. 어머니는 광주 노씨 광산부부인이며, 아버지 김제남은 김전의 증손자입니다.
1613년의 계축옥사는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혐의로 시작되었고 아버지 김제남과 어린 영창대군이 희생되었습니다. 이후 폐모론이 불거져 대북파가 정국을 주도하는 가운데 인목왕후는 서궁에 갇혔습니다.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어 인조의 정통성을 천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계축일기』, 보물 제627호 어필 칠언시,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 제1808호) 관련 기록 등이 그와 연관되어 소개됩니다.
묘호·능호의 구체적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선조의 계비이며 영창대군과 정명공주의 어머니인 연안 김씨 왕후입니다.
계축옥사 이후 폐모론이 일어나 광해군 때 대비의 칭호를 빼앗기고 경운궁에 유폐되었습니다.
『계축일기』가 대표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