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 김씨(延安 金氏) — 황해남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의 한 갈래로, 중종 때 영의정 김전·김근사,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와 그 아버지 김제남을 낸 조선 시대의 문벌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해남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의 한 갈래로, 중종 때 영의정 김전·김근사,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와 그 아버지 김제남을 낸 조선 시대의 문벌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연안 김씨 인구는 약 93,38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연안)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연안 김씨(延安 金氏)는 황해남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의 한 갈래입니다. 연안은 지금의 북한 지역이어서 본관지에서 직접 세거하는 후손은 없고,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93,382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2021년 기준 176,996명이라는 다른 수치를 싣고 있어 출처와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시조는 김섬한(金暹漢)이며, 원시조는 신라 김알지로 소개됩니다.
김섬한은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해 국자감 사문박사를 지낸 인물로 전합니다. 그 윗대 기록은 상고할 수 없어 그를 시조로 삼습니다. 전승에는 김알지의 후예인 두 형제가 왕에게 간언하다 미움을 받아 형은 북빈경(지금의 강릉)으로, 아우는 시염성(지금의 연안)으로 유배되었고, 형의 후손이 강릉 김씨, 아우의 후손이 연안 김씨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만 강릉 김씨와 실제로 같은 뿌리인지는 문헌 증거가 없어 의문이 제기되며, 가야 왕손설과 백제인 후손설 등 다른 기원 설도 함께 전하므로 확정된 사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국 산시성의 옌안(延安)과 한자가 같아 중국에서 온 가문이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돌지만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밀직제학을 지낸 김도가 집안을 일으켰다고 전합니다. 그의 아들 김자지는 우왕 때 급제해 조선의 대사헌·형조판서에 올랐고, 다섯 번 공신을 탄핵하는 상소로 이름을 남겼으며, 아우 김여지(金汝知)는 세종 때 좌참찬으로 문익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두 형제의 묘는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왕창리의 문중 묘역에 나란히 있어 양평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편 조선 개국공신으로 연성군에 봉해진 김로도 연안 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자지의 증손자 김전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중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같은 시기 김근사도 영의정을 지냈으며, 김전의 조카 김안로는 아들이 중종의 맏딸 효혜공주와 혼인하면서 권신이 되어 좌의정까지 올랐습니다. 이 무렵 연안 김씨는 삼정승 중 두 자리를 차지했다고 소개됩니다. 하지만 김안로는 작서의 변 등 여러 옥사를 일으켜 '정유 3흉'으로 불리다가 1537년 사사되었습니다. 이 일은 한 집안의 영광과 부침을 함께 보여 줍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왕실 인연은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입니다. 그의 아버지 김제남은 김전의 증손자입니다. 1613년 계축옥사로 김제남이 사사되고 영창대군이 죽었으며 인목왕후는 서궁에 유폐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습니다. 이 밖에 김희가 효혜공주의 남편(연성위)이 되었고, 영응대군의 계비 연성부부인과 정신옹주의 사위 김규, 의친왕비 등이 연안 김씨로 소개됩니다.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163명, 정승 6명, 대제학 1명, 왕비 1명, 종묘 배향 공신 3명을 낸 문벌로 설명됩니다.
후기에도 영의정이 이어졌습니다. 정조 때 김익(1723~1790)이, 순조 때 김재찬(1746~1827)이 영의정을 지냈고 김재찬은 홍경래의 난 때 민심 수습에 힘썼다고 평가됩니다. 문인으로는 소품체의 대표 인물이며 유배 중 『우해이어보』를 쓴 김려(1766~1821)가 있고, 중기에는 과거에 응하지 않고 그림에만 전념해 최립·한호와 삼절로 불린 김시(1524~1593)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영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개국은 영주의 만취당으로 이어지는 계통입니다.
현대에는 제11대 대법원장 김덕주와 RNA 연구로 알려진 생명과학자 김빛내리가 있고, 위키백과는 제15대 부총리 김원기(1924~2001), 19대 국회의원 김성주, 대법관 김용담 등도 연안 김씨로 소개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김제남의 후손인 구한말 관료 김사철 등 조선귀족 작위를 받은 사람이 있었고, 한편 독립운동가로 김우전·김여제·김창의·김기홍 등이 위키백과의 인물 목록에 오릅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번에 본관과 사적을 개별 자료로 교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개성부윤공파, 한림학사공파, 공부전서공파, 밀직제학공파, 직강공파, 참판공파, 사간공파, 의민공파
호부원외랑공계에 속하는 파로, 파조는 김안주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호부원외랑공계에 속하는 파로, 파조는 김안보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호부원외랑공계에 속하는 파로, 파조는 김선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호부원외랑공계에 속하는 파로, 파조는 김을진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장군공계에 속하며 파조는 김승으로 전합니다. 전남 영광군 군남면 동간리의 매간당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234호)이 이 파의 종가로 소개되며, 16세기 중엽 김영이 숙부 김세공을 따라 영광에 온 뒤 정착했다고 전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장군공계에 속하며 파조는 김황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장군공계에 속하며 파조는 김지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시호 의민을 받은 김제남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1901년 간행된 『연안김씨의민공파보』가 전합니다. 선조의 장인이자 인목왕후의 아버지인 김제남의 후손 계통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중·대동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김자지(고려 말~조선 초 대사헌·형조판서), 김로(조선 개국 3등공신·연성군), 김전(중종 때 영의정), 김근사(중종 때 영의정), 김안로(중종 때 좌의정·권신), 김제남(선조의 장인·인목왕후의 아버지), 인목왕후(선조의 계비), 김시(삼절로 불린 문인화가), 김개국(임진왜란 영천 의병장), 김익(정조 때 영의정), 김재찬(순조 때 영의정), 김려(소품체 문인·『우해이어보』), 김덕주(제11대 대법원장), 김빛내리(RNA 연구 생명과학자)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 등에는 연안 김씨가 시조 이후 호부원외랑공계 4파와 대장군공계 19파 등 20여 파로 나뉜다고 소개됩니다. 호부원외랑공계에는 개성부윤공파(김안주)·한림학사공파(김안보)·공부전서공파(김선)·밀직제학공파(김을진)가 있고, 대장군공계에는 당진현감공파(김귀생), 경시서령공파(김위), 관찰사공파(김경), 재령군수공파(김잉), 중추부사공파(김유), 정선공파(김하), 내자시윤공파(김해), 사정공파(김비), 도관찰사공파(김수), 좌군사정공파(김구), 고원군사공파(김준), 연안부사공파(김구), 직강공파(김승), 군수공파(김혼), 교수공파(김순), 현감공파(김숙), 사간공파(김지), 참판공파(김황), 구례현감공파(김저)가 있다고 합니다. 이 밖에 김제남을 파조로 하는 의민공파는 1901년 간행된 『연안김씨의민공파보』로 확인됩니다. 파 이름과 파조는 자료마다 달라질 수 있어 족보로 대조해야 합니다.
본관지가 북한에 있어 후손은 전국에 흩어져 삽니다. 경기 양평군 강하면 왕창리(김자지·김여지 묘역),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김전 묘와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12호),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김제남 묘와 신도비,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1호), 전남 영광군 군남면 동간리의 매간당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234호), 경북 영주시의 괴헌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262호)과 만취당(경북 문화재자료 제451호)이 대표적 유적입니다. 영주 괴헌고택은 입향조의 8대손이 1779년에 지은 집으로 영주댐 건설로 이전 보수가 진행되었고, 영광 연안 김씨가는 일제강점기 농업경영을 다룬 연구도 있을 만큼 400여 년 세거한 집안으로 소개됩니다. 나무위키는 이 밖에 군포 산본동, 가평 산유리, 예산 삽교읍 수촌리, 창원 동읍, 양양 손양면, 평창 진부면, 임실 삼계면, 제주 조천읍 함덕리 등을 집성촌으로 적고 있습니다.
종친 단체로는 연안김씨대종회가 있으며, 모토는 '숭조·돈목·계후'(조상을 받들고 친족이 화목하며 후손을 깨우친다)로 소개됩니다. 서울의 연안빌딩이 종친회관이고, 경기 양평군에는 경원재(敬源齋) 사당이 있어 경원대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에 실린 항렬자는 21세부터 연(淵), 수(秀), 사(思), 기(基), 종(鍾), 영(泳), 주(柱), 성(性), 중(重), 현(鉉), 원(源), 식(植), 헌(憲), 규(圭), 진(鎭), 택(澤), 근(根), 희(熙), 배(培), 균(鈞), 철(澈), 표(杓), 항(恒) 순입니다. 파에 따라 항렬이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자기 집안 족보를 확인하세요.
김씨는 본관이 매우 많습니다. 같은 이름의 인물을 다른 김씨로 잘못 소개하는 경우가 흔하므로 김해 김씨·경주 김씨·강릉 김씨·광산 김씨·안동 김씨 문서와 견주어 보세요. 예를 들어 김안국·김정국 형제는 의성 김씨이고 연안 김씨 김안로와는 다른 계통입니다. 또 같은 '연안'이라는 지명을 쓰는 연안 이씨와도 서로 다른 성씨입니다. 이번 초안은 위키백과 해당 인물 문서의 본관과 분류를 확인한 인물만 실었습니다.


연안 김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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