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慶州 金氏) — 신라 김씨의 시조인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신라 왕성 계열의 성씨입니다.
신라 김씨의 시조인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신라 왕성 계열의 성씨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경주 김씨 인구는 약 1,888,12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경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영분공파(파조 김명종), 대안군파(김은열), 태사공파(김인관), 판도판서공파(김장유), 장군공파(김순웅), 호장공파(김위영)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김알지(경주 김씨 시조), 김명종(영분공파 파조), 김은열(대안군파 파조), 김인관(태사공파 파조), 김장유(판도판서공파 파조), 김순웅(장군공파 파조), 김위영(호장공파 파조), 김부식(삼국사기 편찬), 김정희(추사·서예가), 김홍집(조선 총리대신)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경주 김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경주 김씨 계열 인물입니다.
경주 김씨는 신라의 국성(國姓)으로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이며,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이 935년 고려에 귀부(歸附)한 뒤 그 후예가 여러 대종파로 갈라졌습니다. 오늘날 인구는 약 180만 명으로, 김해 김씨에 이어 김씨 가운데 두 번째로 많습니다. 주요 대종파와 그 파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명종은 경순왕의 셋째 아들로 전하며, 고려에서 영분공(永芬公)에 봉해져 영분공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이 계통에서 뒷날 수은공파(樹隱公派) 등이 갈라져 나왔습니다.
김은열은 경순왕의 아들(넷째 아들로 기록되기도 합니다)로 전하며, 대안군(大安君)에 봉해져 대안군파의 파조가 되었습니다. 고려 초 왕실과 인척으로 이어지며 경주 김씨의 큰 갈래를 이루었습니다.
김인관은 고려 예종 무렵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를 지낸 인물로 태사공파의 파조입니다. 경주 김씨 여러 분파 가운데 가장 번창하여, 뒷날 상촌공파(桑村公派)를 비롯한 큰 갈래가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경순왕과의 정확한 세계(世系) 연결은 문헌으로 온전히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김장유는 고려 말 호구·토지·조세를 관장하던 판도사(版圖司)의 판서(判書)를 지낸 인물로 판도판서공파의 파조입니다.
김순웅은 고려 초 목종(穆宗) 무렵 대장군(大將軍)을 지낸 무장으로 전하며 장군공파의 파조입니다. 신라 원성왕(元聖王)의 후예라는 설도 함께 전하고, 뒷날 계림군파(鷄林君派) 등이 이 계통에서 갈라졌습니다.
김위영은 고려 초 경주의 향리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을 지낸 인물로 호장공파의 파조입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한 대학자 김부식(金富軾)이 이 호장공파 계통에서 배출되었습니다.
파조의 세계(世系)와 분파 유래는 문중·족보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일부 계통은 경순왕과의 연결이 문헌으로 완전히 증명되지 않습니다. 우리 집안 계통은 보유하신 족보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파·문중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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