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慶州 金氏) — 신라 김씨의 시조인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신라 왕성 계열의 성씨입니다.

신라 김씨의 시조인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신라 왕성 계열의 성씨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경주 김씨 인구는 약 1,888,12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경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경주 김씨는 신라 김씨 왕실의 시조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합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5년(탈해이사금 9) 금성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걸린 금빛 궤짝 안에 사내아이가 있었고, 탈해왕이 그 아이를 거두어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 총명하다 하여 이름을 알지라 지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시림은 계림(鷄林)으로 불리게 되었고, 계림은 뒤에 신라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래서 경주 김씨를 계림 김씨·신라 김씨라고도 부릅니다.
김알지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세한·아도·수류·욱보·구도로 이어진 그의 7대손 미추이사금이 김씨로는 처음 신라의 왕(제13대)이 되었습니다. 이어 내물마립간 이후로는 김씨가 왕위를 이어 제56대 경순왕까지 신라 왕실을 이루었습니다.
935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신라의 서울 금성은 경주(慶州)로 이름이 바뀌었고, 경순왕은 경주를 식읍으로 받고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이 되었습니다. 경순왕의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으면서 오늘날의 경주 김씨가 이루어졌습니다. 2015년 인구는 경주 김씨와 월성 김씨를 합쳐 약 189만 명으로, 김해 김씨에 이어 김씨 가운데 두 번째로 많습니다.
고려 시대에 경주 김씨는 여러 갈래로 나뉘며 중앙 관계에 진출했습니다. 경순왕의 아들로 전하는 김명종의 영분공파와 김은열의 대안군파, 경주 호장 김위영을 파조로 하고 김부식 형제를 배출한 호장공파, 예종 무렵의 김인관을 파조로 하는 태사공파, 고려 초 무장 김순웅의 장군공파, 고려 말 김장유의 판도판서공파 등이 대표적이며, 이 밖에도 내사령공파·평장사공파·상서공파·목사공파·직장공파 등 수십 개의 파가 전합니다. 고려 말에는 태사공파에서 나온 김자수가 조선 조정의 부름을 거부하고 목숨을 끊어 절의의 상징이 되었고, 그 후손은 상촌공파를 이루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사림과 외척 양쪽에서 이름난 인물이 나왔습니다. 충암 김정은 조광조와 함께 개혁 정치를 펴다 기묘사화로 제주에 유배되어 생을 마쳤고, 학주 김홍욱은 소현세자빈 강씨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효종의 노여움을 사 장살되었습니다. 숙종 때에는 김주신의 딸이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가 되었고, 영조 때에는 김홍욱의 후손 김한구의 딸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되었으며, 같은 집안의 김한신은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혼인해 월성위에 봉해졌습니다. 김한신의 증손이 추사 김정희입니다.
개항기에는 갑오개혁을 이끈 총리대신 김홍집이, 일제강점기에는 대종교 제2대 교주로 민족 사학을 일군 김교헌이 나왔습니다.
경주 김씨는 본관지 경주를 비롯해 경북·경기·충청·전북·강원 등 전국에 고루 퍼져 살며, 파마다 다른 곳에 세거지를 이루었습니다.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영분공파, 대안군파, 태사공파, 상촌공파, 판도판서공파, 장군공파, 호장공파
영분공파는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로 전하는 김명종(金鳴鍾)을 파조로 합니다. 김명종이 고려에서 영분공(永芬公)에 봉해지면서 파 이름이 붙었습니다.
경순왕의 아들을 파조로 하는 경주 김씨의 큰 갈래로, 뒷날 수은공파(樹隱公派) 등 여러 지파가 이 계통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전합니다.
대안군파는 경순왕의 아들(넷째 아들로 기록되기도 합니다)로 전하는 김은열(金殷說)을 파조로 합니다. 김은열이 대안군(大安君)에 봉해지면서 파 이름이 붙었습니다.
고려 초 왕실과 혼인으로 이어지며 경주 김씨의 큰 갈래를 이루었습니다.
태사공파는 고려 예종 무렵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를 지낸 김인관(金仁琯)을 파조로 합니다. 신라 왕실의 후예로 전하나(헌강왕의 후예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경순왕과의 정확한 세계(世系) 연결은 문헌으로 온전히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경주 김씨 여러 분파 가운데 가장 번창한 파로 꼽히며, 이 계통에서 상촌공파 등 큰 지파가 갈라져 나왔습니다. 조선 중기의 김세필, 학주 김홍욱,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추사 김정희 등이 태사공파 계통 인물로 꼽힙니다.
경주김씨 상촌공파(慶州金氏 桑村公派)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후손으로 전하는 태사공(太師公) 김인관의 9세손 김자수(金自粹, 1351~1413)를 파조로 하는 경주 김씨의 주요 분파입니다. 태사공파에서 갈라진 지파이며, 파 이름은 김자수의 호 상촌(桑村)에서 왔습니다.
김자수는 자가 순중(純仲)으로, 이색·정몽주 문하에서 공부하고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한 뒤 고려 말 판전교시사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습니다. 조선이 들어선 뒤 태종이 형조판서로 다시 부르자 한양으로 가던 길에 광주 추령(지금의 성남 분당 일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킨 인물로 기려집니다.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하며, 시문집 『상촌집(桑村集)』이 있습니다. 묘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경북 안동에는 재사 추원재(追遠齋)와 효자비가 남아 있습니다.
조선 후기 충청도 관찰사로 대동법 시행에 힘쓴 학주 김홍욱(金弘郁)이 1654년 김자수의 신도비 글씨를 썼으며, 김홍욱의 후손에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영조의 부마 월성위 김한신, 추사 김정희 등이 나온 것으로 전합니다.
판도판서공파는 고려 말 호구·토지·조세를 관장하던 판도사(版圖司)의 판서(判書)를 지낸 김장유(金將有)를 파조로 합니다. 경순왕의 후예로 전합니다.
그 6세손으로 기묘사화(1519) 때 화를 입은 김정(金淨)이 이 계통 인물로 꼽힙니다.
장군공파는 고려 초 목종 무렵 대장군(大將軍)을 지낸 무장으로 전하는 김순웅(金順雄)을 파조로 합니다. 신라 원성왕(元聖王)의 후예라는 설이 함께 전합니다.
뒷날 조선 개국공신 계림군(鷄林君) 김균을 파조로 하는 계림군파(鷄林君派) 등이 이 계통에서 갈라졌으며,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의 아버지 김주신, 구한말 총리대신 김홍집 등이 이 계통 인물로 꼽힙니다.
호장공파는 고려 초 경주 지방 향리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을 지낸 김위영(金魏英)을 파조로 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한 대학자 김부식(金富軾)과 그 형제 김부일·김부의 등이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김알지(경주 김씨 시조), 경순왕(신라 마지막 왕), 김명종(영분공파 파조), 김은열(대안군파 파조), 김인관(태사공파 파조), 김자수(상촌공파 파조), 김장유(판도판서공파 파조), 김순웅(장군공파 파조), 김위영(호장공파 파조), 김부식(삼국사기 편찬), 김정(충암·기묘명현), 김정희(추사·서예가), 김홍집(조선 총리대신), 김교헌(대종교 2대 교주)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경주 김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경주 김씨 계열 인물입니다.
경주 김씨는 신라의 국성(國姓)으로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이며,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敬順王)이 935년 고려에 귀부(歸附)한 뒤 그 후예가 여러 대종파로 갈라졌습니다. 오늘날 인구는 약 180만 명으로, 김해 김씨에 이어 김씨 가운데 두 번째로 많습니다. 각 대종파와 파조는 위 주요 파(派)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조의 세계(世系)와 분파 유래는 문중·족보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일부 계통은 경순왕과의 연결이 문헌으로 완전히 증명되지 않습니다. 우리 집안 계통은 보유하신 족보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신라 김씨 왕실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입니다. 경주 계림의 금궤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전하며, 그 7대손 미추이사금이 김씨 첫 신라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경주 김씨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으며 이루어졌습니다.
수십 개의 파가 전하며, 대표적으로 영분공파(김명종)·대안군파(김은열)·태사공파(김인관)·상촌공파(김자수)·판도판서공파(김장유)·장군공파(김순웅)·호장공파(김위영)가 꼽힙니다. 이 가운데 태사공파가 가장 번창한 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경주 김씨와 월성 김씨를 합쳐 약 189만 명으로, 김해 김씨에 이어 김씨 가운데 두 번째로 많습니다.
먼저 우리 집안의 파를 확인한 뒤 경주김씨대종친회나 해당 파 종회에 문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도 여러 판의 족보가 소장돼 있습니다. 확인한 조상은 족보월드에 입력해 세대별 족보 트리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항렬은 파마다 다르게 정한 경우가 많아, 우리 파의 항렬표를 종친회나 파보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할아버지·아버지·나의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간 글자를 맞춰 보면 어느 파·몇 세손인지 좁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김알지 → 김구도 → 미추이사금 · 경순왕과 아들들 · 7개 파 파조다른 파·문중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경주 김씨 족보·가계도 정보 추가/수정 요청하기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