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친일반민족행위자)
| 생몰 | 1895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경주 김씨 |
김억(金億)은 대한제국·일제강점기의 인물로, 호는 안서(岸曙)이며 평안북도 곽산 출신이다(생년은 1895년 또는 1896년으로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다). 1907년 오산학교에 입학하고 1913년 일본 게이오의숙에 진학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폐허》·《창조》 동인으로 활동하며 서구 상징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해 1920년대 초 상징시풍이 문단에 자리잡는 데 기여하였고, 시인 김소월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친일 행적 그러나 말기에는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등 징병을 선전하는 군국가요를 작사하고, 국민총력조선연맹과 조선문인보국회 등에서 간부를 지내며 친일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행위로 정부(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또는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에 오른 친일 인물이다.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며, 1958년경 협동농장으로 강제이주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