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영천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문신, 호 만취당, 선무원종공신

| 생몰 | 1548 ~ 1603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연안 김씨 |
김개국(金蓋國, 1548~1603)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 자는 공제(公濟)·공징, 호는 만취당(晩翠堂)입니다.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김몽득입니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소고 박승임의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1573년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되었고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습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신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 의병을 모아 의병장으로 활약했습니다. 1595년 예빈시주부에 특별 임명되었고, 정랑을 거쳐 군수에 이르렀습니다.
당색으로는 동인이었다가 북인이 되었고, 북인이 대북과 소북으로 갈릴 때에는 유몽인·남이공 등과 함께 소북에 속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는 의리로 한 치도 굽히지 않아 불우하게 살았다고 전합니다. 사후 1605년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고, 집의와 승지, 좌승지로 추증되었으며 1643년 영천 삼봉서원에 제향되었습니다. 저서로 『만취일고』와 『만취관동일록』, 『만취예조일기』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7월 김개국은 피난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 의병을 규합했습니다. 그 공으로 사후 선무원종공신 3등에 올랐습니다.
영주 만취당(晩翠堂)은 영주 지역의 연안 김씨를 대표하는 건물로, 2003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영주 만취당 김개국 종중 소장 전적 및 책판」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6호입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름을 붙인 만취당은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영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연안 김씨 문신으로 호는 만취당입니다.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