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김씨(江陵 金氏) — 신라 태종무열왕의 후손인 명주군왕 김주원을 시조로 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성씨입니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후손인 명주군왕 김주원을 시조로 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성씨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강릉 김씨 인구는 약 179,593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강릉)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강릉 김씨(江陵 金氏)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를 본관으로 하며,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79,593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후손으로 전하는 김주원을 시조로 합니다. 이름이 비슷한 안동 김씨·김해 김씨·경주 김씨와는 본관이 다른 별개의 가문입니다.
785년 선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신하들이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큰비로 알천을 건너지 못해 입궐하지 못했고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겨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했다고 전합니다. 김주원은 강릉으로 물러났고 원성왕은 그를 명주군왕에 봉했으며, 후손들은 강릉을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아들 김헌창은 822년 웅천주에서 장안국을 세워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습니다.
고려 건국 때 명주장군 순식(왕순식, 김순식으로도 전함)이 왕건에게 귀부해 왕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하며, 후손은 조선 건국 뒤 김씨로 되돌아갔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고려 중기에는 김인존이 윤관의 여진 정벌에 반대하다가 뒤에 문하시중에 올랐고, 김상기·김영석·김사혁 등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조선 초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해 방랑하며 승려가 된 생육신으로,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집으로 꼽히는 《금오신화》를 지었습니다. 후기에는 영의정을 세 차례 지낸 김상철과 이조판서 김상성이 배출되었습니다.
강원도의 강릉·삼척·철원, 경기도의 양주·김포·용인, 충남 당진, 세종시 연서면, 전북 익산 낭산면, 경북 의성 안계면 등에 후손이 많습니다. 이 사이트는 한림공파·평의공파·부정공파·옥가파 등 4대 파와 청풍파·송오공파 등을 소개하며, 대종회는 강릉김씨대종회입니다.
한림공파, 평의공파, 부정공파, 옥가파, 청풍파, 송오공파
한림공파는 시조 김주원의 아들 김신의 증손 가운데 셋째인 한림공 김영견(金英堅)에서 나온 파로, 강릉 김씨의 4대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위에 상서공 신리파, 만호공 김포파, 지산군 김포파, 첨사공파, 충순공 동래파 등이 있습니다. 부산 동래에 자리 잡은 충순공 동래파의 파조 김일신은 김영견의 18세손으로 전합니다.
평의공파는 김신의 증손 가운데 둘째인 김영길(金英吉) 계열에서 나온 파로, 왕김파(王金派)라고도 불립니다.
강릉을 근거지로 한 강릉 김씨의 4대 파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부정공파는 김신의 증손 가운데 맏이인 김영진(金英珍) 계열에서 갈라진 파로, 김경생(金慶生)을 파조로 합니다. 김경생은 1326년(충숙왕 13)에 태어나 조선 초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냈습니다.
묘소가 전하지 않아 강릉 내곡동 신복사지 입구에 단소와 비를 세우고 아들 김윤귀(金允貴), 손자 김필양(金匹陽)의 제단도 함께 마련했습니다. 강릉 김씨 4대 파의 하나입니다.
옥가파는 김영진 계열에서 갈라진 파로, 호가 괴당(槐堂)인 22세 김윤신(金潤身)을 파조로 하여 괴당공 옥가파라고도 합니다. 김윤신은 문과에 급제하여 원주·파주 목사를 지냈습니다.
맏아들 김임(金銋)의 후손이 강릉 옥가와 구정면 학산리, 성산면 삼왕동, 횡성 둔내면, 부산 동래 등지에 자리 잡았습니다. 강릉 김씨 4대 파의 하나입니다.
청풍파는 김신의 증손 가운데 맏이인 김영진 계열에서 갈라진 파로, 판서공 청풍파라고도 합니다.
같은 김영진 계열에서 영사공 영월파, 부정공파, 지사공 모안파, 괴당공 옥가파 등이 함께 나왔습니다.
송오공파는 고려 말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전하는 김승로(金承露, 1359~1438)를 파조로 합니다.
김승로는 이 파의 입향조이기도 하며, 오늘날 세종시 지역 강릉 김씨의 주류를 이루는 파입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김주원(시조·명주군왕), 김헌창(장안국을 세운 김주원의 아들), 김인존(고려 문하시중), 김시습(호 매월당·생육신·금오신화 저자), 김상철(조선 영의정), 김상성(조선 이조판서)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본관이 강릉이며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벽산청은·췌세옹, 법명은 설잠(雪岑)입니다. 5세에 신동으로 이름났고, 수양대군의 단종 폐위 소식에 책을 불사르고 21세에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경주 금오산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지었고, 1493년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때문에 '매월당 강릉 김씨'로도 검색되는 가문의 대표 인물입니다.
근현대에는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진만, 건설부 장관 김주남, 건설교통부 장관 김윤기,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 강원도지사 김진선, 여성가족부 장관 김금래 등이 강릉 김씨로 소개됩니다(생몰·상세는 확인하지 못해 링크하지 않았습니다).
김주원의 계보는 '김알지의 21세손'(강릉 김씨 소개)과 '김문왕의 5세손'(김주원 항목)으로 표기가 갈립니다. 왕순식(김순식)이 강릉 김씨의 조상인지는 문헌마다 다르게 서술되어 후손 관계를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명주군왕 김주원~매월당 김시습·김상철다른 파·문중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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