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품체 문장의 대표 문인, 부령·진해 유배 중 『우해이어보』를 지은 호 담정
| 생몰 | 1766 ~ 1821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연안 김씨 |
김려(金鑢, 1766~1821)는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로 본관은 연안,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藫庭)입니다. 집안이 노론의 비중 있는 명문이어서 당쟁의 화를 많이 입었다고 합니다. 1780년 15세에 성균관에 들어갔고,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체 문장을 익혀 김조순과 함께 『우초속지』를 냈으며 이옥 등과 교유하며 소품체의 대표적 인물로 주목받았습니다.
1797년 강이천의 비어사건에 연루되어 부령으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가난한 농어민과 가까이 지내며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키웠습니다. 부기(府妓)의 처지를 이해하고 시를 지었다가 필화를 입었고, 1799년에는 저서가 대부분 불에 탔습니다.
1801년 재조사에서 천주교도와의 교분이 문제되어 진해로 다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어민들과 지내며 『우해이어보』를 지었습니다. 1806년 아들의 상소로 10년의 유배가 끝났고, 이후 『담정총서』, 『한고관외사』, 『창가루외사』 등 총서 편집에 전념했습니다. 1812년 의금부를 시작으로 정릉참봉·경기전령을 거쳐 1817년 연산현감이 되었습니다.
김려는 성균관 시절 패사소품체에 매료되어 김조순과 함께 소품집을 냈습니다. 이옥 등과 교유하며 정조 시대 문체 논쟁 속에서 소품체의 대표 문인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부령에서는 서민의 삶을 가까이서 보았고, 진해에서는 어민들과 지내며 바다 생물을 관찰해 『우해이어보』를 썼습니다. 유배 경험은 그의 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1806년 유배가 끝난 뒤에는 자신과 벗들의 시문을 모은 『담정총서』와 야사를 모은 『한고관외사』·『창가루외사』를 편찬했습니다. 이 총서 작업은 조선 후기 문헌 자료 보존에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소품체 문장으로 이름난 연안 김씨 문인으로 호는 담정입니다.
진해 유배 중 어민들과 지내며 바다 생물을 기록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