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시조로 풀어 쓴 영남가단의 학자·시조 작가, 호는 두곡·취병, 경주부윤
| 생몰 | 1531 ~ 1605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안동 고씨 |
고응척(1531~1605)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시조 작가로 본관은 안동입니다. 자는 좌명, 호는 두곡·취병이며, 아버지는 고몽담, 어머니는 정세형의 딸, 부인은 남극문의 딸이라고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그를 안동 고씨의 시조로 소개합니다.
154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61년 식년문과에 급제했습니다. 1562년 함흥교수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사직하고 고향에서 도학을 닦았으며, 1595년 풍기군수를 시작으로 회덕현감, 강원도사, 경상도사, 성균관 사성을 지냈습니다. 낙향한 뒤 1605년 경주부윤에 부임했으나 곧 사직했다고 합니다. 일부 자료는 과거 연도를 달리 적습니다.
『두곡집』에 시조 28수가 실려 있고, 그 가운데 25수는 『대학장구』의 내용을 시조로 옮긴 교훈시, 나머지 3수는 「호호가」입니다. 이현보·권호문·박인로 등과 함께 영남가단을 이룬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 밖에 『대학개정장』『안자서』『인지편』 등을 남겼다고 합니다. 1702년 선산읍 낙봉서원에 제향되었다고 하며, 2019년에는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 안동 고씨 선영에서 이장 중 그의 미라가 발견되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1561년 문과에 급제한 뒤 함흥교수로 나아갔으나 곧 물러나 향리에서 학문을 닦았다고 합니다. 1595년 풍기군수를 시작으로 회덕현감·강원도사·경상도사·성균관 사성을 지냈고, 1605년 경주부윤에 부임했다가 곧 사직했습니다. 저서로 『두곡집』『대학개정장』『안자서』 등이 전합니다.
『두곡집』 상권에 시조 28수가 실려 있습니다. 앞의 25수는 『대학장구』의 가르침을 시조로 풀어 쓴 교훈시이고, 26~28수는 「마자재가」를 옮긴 「호호가」입니다. 이현보·권호문·박인로 등과 함께 영남가단의 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위키백과는 고응척을 안동 고씨의 시조로 소개하지만, 다른 자료는 시조를 고응섭으로 적어 이름이 갈립니다. 2019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 안동 고씨 선영에서 이장 중 회곽묘 안 목관에서 미라가 발견되었고, 명정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의복과 솜이불, 버선이 함께 나왔고 우복 정경세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만장도 있었다고 합니다. 후손의 동의를 얻어 CT 촬영과 유전자 분석을 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 안동 고씨 선영에 있었다고 보도되었으며, 2019년 이장 중 미라가 발견되었습니다. 현재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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