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헌 柳軒

연산군 때 대사간, 청백리, 호 낙봉, 낙봉공파의 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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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62 ~ 1506
시대조선 전기
본관전주 류씨

생애 약력

류헌(柳軒, 1462~1506)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백여(伯輿), 호는 낙봉(駱峯)입니다. 증조부 류빈, 조부 류말손(집의 증직), 아버지 류계장(첨지중추부사), 어머니는 대구부사 조효생의 딸이며, 부인 이씨는 정종의 증손녀 명산도정의 딸로 전합니다. 1486년 생원·진사시에, 1489년 문과에 급제해 예문관 검열·승정원 주서를 거쳐 사헌부 지평·집의, 의정부 검상·사인을 지냈습니다.

연산군 때 대사간으로서 외척 우대와 내수사 장리의 폐단 등을 직언했고, 무오사화 때 임희재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홀로 주장했다고 전합니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신수영의 무고에 항의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임사홍·류자광의 모함으로 제주도로 귀양 갔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방환령이 내렸으나 돌아오지 못하고 45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유배지에서 별세했다는 설과 돌아오던 길에 바다에서 해적을 만났다는 설이 함께 전합니다.

중종은 그의 억울함을 안타깝게 여겨 이조참판에 추증하고 청백리에 올렸으며 자손을 등용하라 명했고, 뒤에 이조판서로 추증했습니다. 아들 세붕·세린·세구·세봉이 있으며, 둘째 세린의 손자가 선조 때 영의정이 된 류영경입니다. 후손이 낙봉공파를 이룹니다.

직간과 갑자사화

낙봉공 유사에는 그가 연산군 앞에서 '나라를 그르치는 것은 소인에게 일을 맡기거나 환관·외척이 권력을 쥐는 데서 비롯된다'는 취지로 아뢴 일, 내수사 장리와 장성 축조의 폐단을 논계한 일이 실려 있습니다.

1504년 대사간으로서 신수영의 무고로 시작된 사화에 항의하다 임사홍·류자광의 흉계에 몰려 제주로 귀양 갔고, 사간 강숙돌도 함께 유배되면서 사간원이 폐지되었다고 전합니다.

기림과 후손

충청수영에는 그의 생사당이 있었다고 하며, 전주 사람들이 임진왜란 이전부터 향현사를 세워 기렸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순조 때 후손 류의가 전주를 찾아 옛터를 확인했고, 류엄이 표석을 세웠으며 그의 손자 류숙이 전라 좌수사로서 옛터를 정비했다고 합니다.

용고서원은 1878년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23년 전주 유림이 재물을 모아 다시 세웠다고 전합니다.

묘소

양주 송산리 수락산 기슭에 의관만으로 장례했다고 전합니다. 전주 남쪽 옛터에는 후손들이 표석을 세웠고 향현사가 있었으며, 완주 이서면 회룡동의 용고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1878년 훼철, 1923년 재건).

후손

장남 세붕의 계열이 번성했고 류영경과 류정량(류정량)이 이어집니다. 순조 때 후손 류의·류엄 등이 옛터와 서원 복원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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