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류씨 족보·가계도

우리집안 온라인 족보 만들기

전주 류씨(全州 柳氏) — 백제 토성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전주 류씨는 류혼·류습·류지를 시조 또는 중시조로 하는 세 계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조 때 영의정 류영경, 안동 수곡파의 유학자 류치명과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인구 — 약 78,690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전주 류씨란

백제 토성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전주 류씨는 류혼·류습·류지를 시조 또는 중시조로 하는 세 계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조 때 영의정 류영경, 안동 수곡파의 유학자 류치명과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주 류씨 인구는 약 78,690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류씨라도 본관(전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전주 류씨(全州 柳氏)의 본관 전주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이며, 백제에서 유래한 토성(土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갈래의 족보는 고려 초 문하시랑평장사 류방헌의 묘지명에 적힌 선대(각간 류기휴, 후백제 우장군 류법반)를 근거로 문화 류씨보다 뿌리가 앞선다고 설명하지만, 다른 족보는 류습가 문화 류씨에서 갈라져 전주로 옮겨 왔다고 적어 의견이 갈립니다.

성씨는 시조가 다른 세 계통으로 이루어집니다. 충숙공파는 류기휴를 시조, 류혼(柳渾)을 중시조로 받들고, 장령공파는 고려 말 완산백에 추봉된 류습를, 현감공파는 평장사를 지낸 류지(柳池)를 시조로 합니다. 지금은 장령공파의 후손이 가장 많아 보통 전주 류씨라 하면 이 계통을 가리키며, 장령공파에서 회헌공파(류의손), 낙봉공파(류헌), 안동 수곡파(류복기 이하), 용인 묵계공파(류복립)가 갈라졌습니다.

세거지는 전주·완주(이서 반교리·상관 원당리·소양 명덕리 등)·김제 일대의 전북,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무실)·삼산, 경기 용인시 처인구 등입니다. 문중은 전주류씨대종중(jjryu.co.kr)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파마다 종친회가 따로 있습니다. 유적으로 완주 이서면 회룡동의 용고서원(회헌·진일재·낙봉 등 배향), 안동의 무실종택(경북 민속문화재 제47호)·정재종택(경북 기념물 제170호), 완주 소양면의 평장사공단이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인구는 약 78,690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주요 파(派)

장령공파, 수곡파, 충숙공파, 현감공파, 회헌공파, 낙봉공파, 묵계공파

장령공파 (掌令公派)

장령공파는 고려 말 전주에 살며 사헌부장령에 추증되고 완산백(完山伯)에 봉해진 류습(柳濕)을 파조로 합니다. 전주 류씨 세 계통 가운데 가장 번성하여, 흔히 전주 류씨라 하면 이 계통을 가리킵니다. 다섯 아들(극강·극서·극수·극제·극거)이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고 전해지며, 사위 심효생은 조선 개국공신입니다. 파조의 묘소는 완주 고산면 율곡리 분토동에 있었고 2010년 전주시 인후동 부인 삼한국대부인 최씨 묘소에 합장되었다고 합니다.

둘째 류극서의 아들 류빈(1370~1448)과 증손 류의손(柳義孫)이 조선 초에 현달했고, 류의손의 후손이 회헌공파, 아우 류말손의 손자 대사간 류헌(柳軒)의 후손이 낙봉공파를 이룹니다. 류빈의 증손으로 6촌 사이인 류숭조(柳崇祖)도 같은 해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류헌의 증손 류영경(柳永慶)은 선조 때 영의정에 올랐으며 그의 손자 류정량(柳廷亮)은 선조의 딸 정휘옹주와 혼인했습니다.

안동의 수곡파(류복기·류치명), 용인의 묵계공파(류복립)도 이 계통에서 갈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완주에서는 이서 반교리·상관 원당리 등에 집성촌이 있었고, 완주 이서면 회룡동의 용고서원에 회헌·진일재·낙봉 등이 배향되었다고 전합니다(1878년 훼철, 1923년 재건). 파 전체는 전주류씨대종중(jjryu.co.kr)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세보와 항렬은 대종중과 갈래별 종중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수곡파 (水谷派)

수곡파는 장령공파에서 갈라진 안동의 지파로, 안동 전주 류씨 또는 무실(務實) 류씨로도 불립니다. 류습의 8세손(자료에 따라 6대손) 류성(柳城, 1533~1560)이 의성 김씨 청계 김진(金璡)의 사위가 되어 1550년 무렵 처가의 농장이 있던 안동 무실(현 임동면 수곡리)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류성의 아버지는 류윤선이며 한양에서 영주로 분가했다고 전합니다.

류성의 맏아들 류복기(기봉)는 김성일 문하에서 배운 의병으로 정유재란에 화왕산성을 지켰고, 둘째 류복립(묵계)은 진주성에서 순절했습니다. 안동의 전주 류씨는 대부분 류복기의 후손으로, 아들 류우잠(도헌)이 문규를 정했다고 합니다. 이후 문과 출신 10여 명, 생원·진사 30여 명, 문집 100여 권을 남긴 영남의 명문이 되었습니다.

퇴계 학맥을 이은 류치명(정재, 1777~1861)과 류장원(동암), 대사간 류정원(삼산) 등이 나왔고, 구한말에는 의병대장 류시연, 협동학교를 세운 류인식, 파리장서에 서명한 류필영·류연박 등이 활동해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후손이 30여 명에 이른다고 전해집니다. 세거지 수곡(무실)·박곡·마령 일대는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어 일부는 수곡 뒷산 이주단지로, 일부는 구미 해평면 일선리로 옮겼습니다.

유적으로 무실종택(경북 민속문화재 제47호, 1988년 이건), 정재종택(경북 기념물 제170호)과 만우정, 삼산고택·삼산정, 기양서당, 동암정 등이 있습니다.

충숙공파 (忠肅公派)

충숙공파는 신라 각간을 지냈다는 류기휴(柳基休)를 시조로, 류혼(柳渾)을 중시조로 하는 계통으로, 전주 류씨 가운데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의 하나입니다. 충숙(忠肅)은 파명이며, 류혼의 시호로 보이나 이 초안에서는 시호 여부와 생몰·관직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계통의 대표 인물은 고려 초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른 류방헌(柳邦憲, 944~1009)입니다. 그의 묘지명(『고려 묘지명 집성』 수록)은 증조 류기휴(각간), 조부 류법반(후백제 우장군), 아버지 류윤겸(대감)과 전주 승화현의 기반을 적고 있어, 전주 류씨를 백제 계통 토성으로 보는 주요 근거가 됩니다. 류방헌은 972년 예부시에 급제해 예부시랑·한림학사를 거쳤고 시호는 정간(貞簡)입니다.

충숙공파는 1993년 『전주류씨호은공파세보』를 펴냈다고 알려져 있어 호은공파 등의 갈래를 둔 것으로 보이나, 갈래의 파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충숙공파 종친회 홈페이지가 있다고 소개되며, 장령공파·현감공파와는 시조가 달라 각기 따로 세계를 이어 왔으므로 같은 전주 류씨라도 세계는 서로 이어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세계와 항렬은 파 종친회에서 확인하세요.

현감공파 (縣監公派)

현감공파는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류지(柳池)를 시조로 하는 계통으로, 류혼·류습 계통과 함께 전주 류씨를 이루는 세 갈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위키백과는 류지의 조부로 제도도부승 류방직, 고조로 국자생원 류운을 적고 있습니다. 1652년 간행된 임진보에는 시조 곁에 방직과 운을 따로 적어 문화 류씨에서 분관되었다는 설을 드러낸다는 해석이 있어, 이 계통의 기원은 토성설과 분관설로 설명이 갈립니다.

평장사공단(壇)은 전북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에 있다고 전하며, 완주 소양 일대가 이 계통의 오랜 세거지로 소개됩니다. '현감공'이라는 파명이 어떤 인물의 관직에서 비롯되었는지, 후손의 제향 방식과 대표 인물은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 계통은 시조가 달라 각기 따로 세계를 이어 왔으며, 장령공파(류습 계통)와 충숙공파(류방헌의 선대)와는 시조 문제로 서로 다른 족보를 가진 것으로 소개됩니다. 대표 인물과 세계, 항렬은 파 종중 세보를 확인하세요.

회헌공파 (晦軒公派)

회헌공파는 장령공파 계통의 조선 초 문신 류의손(柳義孫, 1398~1450, 호 회헌)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지파입니다. 류의손은 시조 류습의 증손으로, 조부 류극서와 아버지 직제학 류빈을 잇습니다. 1426년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수찬·직제학, 승정원 도승지, 이조참판·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세종이 그를 아꼈다고 합니다.

성품이 순후하고 근신해 사람들이 장자라 불렀고, 저서 『회헌일고』가 전합니다. 후손은 파조를 받들어 지파를 이루었고, 완주 이서면 회룡동의 용고서원에 회헌이 낙봉·진일재 등과 함께 배향되었다고 전합니다. 용고서원은 1878년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23년 전주 유림이 재물을 모아 다시 세웠습니다.

류의손의 아우 류말손의 손자가 류헌이어서 회헌공파와 낙봉공파는 형제 후손의 관계에 있고, 류의손의 아버지 류빈의 증손으로는 류숭조도 있습니다. 세계와 항렬은 대종중과 파 종중의 세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낙봉공파 (駱峯公派)

낙봉공파는 장령공파 계통의 대사간 류헌(柳軒, 1462~1506, 자 백여, 호 낙봉)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지파입니다. 류헌은 류빈의 증손으로, 조부 류말손(류의손의 아우)·아버지 류계장(첨지중추부사)의 뒤를 잇습니다. 낙산 또는 낙봉 아래 살았기에 호를 낙봉이라 했다고 전하며, 파명은 자료에 따라 洛峰으로도 적습니다.

1486년 생원·진사시에, 1489년 문과에 급제해 예문관 검열·승정원 주서·사헌부 지평과 집의·의정부 검상과 사인을 거쳐 충청수사, 대사간을 지냈습니다. 연산군 때 직언하다 충청수사로 밀려났고, 1504년 갑자사화에서 신수영의 무고에 항의하다 임사홍·류자광의 모함으로 제주도로 귀양 갔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방환령이 내렸으나 45세로 별세했는데, 유배지에서 별세했다는 설과 돌아오는 길에 해적을 만났다는 설이 함께 전합니다. 중종은 그를 이조참판에 추증하고 청백리에 올렸으며 자손을 등용하라 명했고 후에 이조판서로 추증했습니다.

아들 세붕(전부)·세린(이조참판)·세구(이조판서 증직)·세봉(사과) 가운데 둘째 세린의 손자가 선조 때 영의정에 오른 류영경(1550~1608)이고, 영경의 아들 열의 아들이 정휘옹주와 혼인한 류정량입니다. 인조반정 이후 류영경은 복권되었습니다. 후손 류경창(대사헌·청백리)을 이 계통으로 보는 서술도 있으나 족보 기록에는 영성의 손자로 나와 자료가 엇갈립니다.

유적으로 전주 남쪽(남면 원당리)의 옛터에 후손들이 표석을 세웠고 향현사가 있었으며, 충청수영에는 생사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완주 이서면 회룡동의 용고서원에 회헌·진일재와 함께 배향되었다가 1878년 훼철, 1923년 재건되었습니다. 양주 송산리 수락산 기슭에 의관만으로 장례한 묘가 전합니다. 순조 때 후손 류의가 전주를 찾아 옛터를 확인했고 류엄이 표석을, 그의 손자 류숙이 토지를 정비했다고 합니다. 낙봉공파 종중 홈페이지가 있다고 소개되며, 전주류씨대종중과 함께 활동합니다.

전주 류씨 낙봉공파 영상 | scriptorium

묵계공파 (默溪公派)

묵계공파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류복립(柳復立, 1558~1593, 호 묵계)을 입향조로 하는 지파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일대에 세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류복립은 안동 입향조 류성의 둘째 아들이며 맏형이 류복기로, 안동 수곡파와 같은 장령공파 계통에서 갈라진 것으로 소개됩니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1593년 6월 일본군 대군이 진주성을 공격해 성이 함락된 싸움으로, 성안의 군사와 백성이 큰 희생을 입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류복립의 순절은 안동 지역 향토자료에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용인 처인구를 묵계공파의 세거지로 적으며, 제2대 국회의원 류기수(1902~1986)가 용인 출생이고 그의 손자 유기홍이 제17·19·21대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지만, 이들이 묵계공파에 속하는지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동에서 용인으로 후손이 옮겨 간 경위와 입향 시기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세계·항렬과 종친회 소식은 대종중과 파 종중의 세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류영경(선조 때 영의정), 류의손(예조참판·회헌), 류치명(영남 대유 정재), 류복기(의병·수곡파 기봉), 류복립(진주성 순절 의병), 류림(독립운동가 단주), 류습(장령공파 시조), 류방헌(고려 문하시랑평장사), 류숭조(성균관 대사성·진일재), 류헌(대사간·청백리 낙봉), 류정량(전창위), 류경창(대사헌·청백리), 류정원(대사간·삼산), 류인식(협동학교 교장), 유인촌(배우·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일호(경제부총리), 유안진(시인)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전주 류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전주 류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류림 (1894~1961)독립운동가, 호 단주,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당수류인식 (1865~1928)협동학교 교장, 『대동사』 저자, 신간회 안동지회장

시조와 본관 유래

본관 전주(全州)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입니다. 전주 류씨는 류혼(柳渾)·류습(柳濕)·류지(柳池)를 각각 시조 또는 중시조로 삼는 세 계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충숙공파는 신라 각간을 지냈다는 류기휴(柳基休)를 시조로, 류혼을 중시조로 받들며 1993년 『전주류씨호은공파세보』를 펴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키백과·나무위키 등에는 낙봉공파를 별도로 세어 4파로 적기도 하나, 낙봉공파는 장령공파의 갈래이며 시조는 세 계통으로 설명됩니다.

백제에서 유래한 토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초 문하시랑평장사 류방헌(944~1009)의 묘지명은 증조부 류기휴(각간), 조부 류법반(후백제 우장군), 아버지 류윤겸(대감)을 적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문화 류씨보다 뿌리가 앞선다고 설명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반면 『전주유씨족보』(1952)는 문화 류씨에서 갈라졌다고 적고, 1652년 간행된 임진보에는 시조 곁에 방직·운을 따로 적어 분관설을 뒷받침한다는 해석이 있어 의견이 갈립니다. 또 백제 무왕 때 일본에 건너가 사천왕사 건립에 참여했다는 류중광(柳重光)을 시초로 보는 이야기가 있으나 전승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류습과 장령공파

류습는 고려 말 전주에 살았고 사헌부장령에 추증되어 완산백에 추봉되었다고 합니다. 다섯 아들(극강·극서·극수·극제·극거)이 모두 과거에 급제했고, 사위 심효생도 조선 개국공신이 되어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고 전합니다. 묘소는 완주 고산면 율곡리 분토동에 있었고 재실 시사재가 규모가 컸다고 하며, 2010년 전주시 인후동의 부인 삼한국대부인 최씨 묘소에 합장되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의 '류습(1367~1439)'은 본관이 고흥인 다른 인물이니 혼동하지 마세요.

극서의 아들 류빈(1370~1448)과 손자 류의손은 조선 초에 현달했고, 류빈의 증손으로 6촌 사이인 류숭조(진일재)와 류헌(낙봉)이 같은 해인 1489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이 후손들이 완주 이서 회룡동의 용고서원에 함께 배향되었다고 전합니다.

인구와 세거지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약 78,690명으로 집계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85년 약 47,000명, 2000년 약 61,650명으로 꾸준히 늘었습니다.

전북 전주·완주·김제 일대가 본향입니다. 디지털완주문화대전에 따르면 완주에는 이서면 반교리(100여 세대), 조촌면 장동리, 상관면 원당리·와리 등에 집성촌이 있었고 2015년 완주군 거주자는 1,430명이었습니다. 류습의 후손 류길안이 삼례 유리에 정착하고 그 후손 일파가 소양에 들어가 세거했다고 합니다. 장령공파에서 갈라진 수곡파는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무실)에, 묵계공파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 세거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경남 진주에도 후손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

고려 초 류방헌는 972년 예부시에 급제해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고, 그 이후 정당문학에 이른 류신, 무신정권기에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를 지낸 류광식 등의 이름이 전합니다. 현감공파 시조 류지는 평장사를 지냈다고 알려져 있으며, 조부는 제도도부승 류방직, 고조는 국자생원 류운으로 전하고 평장사공단은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에 있다고 합니다.

고려 말 류습의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해 가문이 크게 일어났고, 사위 심효생과 함께 장령에 추증되었다고 전합니다.

조선 시대

조선 초에는 류의손(회헌)이 도승지·예조참판에 올랐고, 류숭조(진일재)는 성균관 대사성과 성리학 진작으로 시호 문목을 받았습니다. 류헌(낙봉)은 연산군 때 대사간으로 직언하다 갑자사화에 제주로 귀양 갔고 청백리에 올랐습니다. 선조 때 류영경은 영의정에 올랐고, 그의 손자 류정량은 선조의 서녀 정휘옹주와 혼인해 전창위에 봉해졌습니다. 이 밖에 현종 때 대사헌·청백리 류경창, 영조 때 대사간 류정원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에는 류복기(기봉)가 의병에 참여해 정유재란에 화왕산성을 지켰고, 그의 동생 류복립(묵계)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 개요

장령공파(시조 류습)는 가장 번성한 계통으로 회헌공파(류의손 후손), 낙봉공파(류말손의 손자 류헌의 후손), 수곡파, 묵계공파 등의 갈래를 둡니다. 충숙공파는 류기휴·류혼, 현감공파는 류지를 받드는 계통입니다. 파 이름과 세대 표기는 문서마다 차이가 있어 문중 세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수곡파와 독립운동

안동 수곡파(무실 류씨)는 류습의 8세손 류성(1533~1560)이 1550년 무렵 의성 김씨 김진의 사위가 되어 무실(현 임동면 수곡리)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자료에 따라 6대손으로 적기도 합니다). 맏아들 류복기의 후손이 대부분을 이루며, 문과 출신 10여 명·생원진사 30여 명을 냈다고 합니다. 퇴계 학맥을 이은 영남 유림의 중심 가문으로 류치명(정재)와 류장원(동암), 류정원(삼산)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는 의병대장으로 순국한 류시연, 협동학교를 세운 류인식, 파리장서에 이름을 올린 류필영·류연박 등 후손이 널리 활동했고, 광복 뒤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이가 30여 명에 이른다고 전해집니다. 안동 출신의 전주 류씨 독립운동가 류림(단주)은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습니다. 수곡·박곡·마령 일대는 임하댐으로 수몰되어 일부는 이주단지로, 일부는 구미 해평 일선리로 옮겨 갔고, 무실종택은 1988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되었습니다.

항렬과 종친회

항렬은 세대마다 정해진 돌림자를 쓰며 파와 세계에 따라 다릅니다. 위키백과에는 14세부터 45세까지의 항렬표가 있으나 표가 깨져 있고, 석(錫)·래(來)·근(根)·수(秀)·희(熙)·한(漢) 같은 글자가 보입니다. 정확한 돌림자는 파별 세보와 대종중에서 확인하세요.

전주류씨대종중(jjryu.co.kr)이 대종중 사이트를 두고 있고, 충숙공파 종친회, 낙봉공파 종중 등 파별 홈페이지도 있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근현대 인물

현대에는 배우이자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전 경제부총리 유일호, 시인 유안진 등이 전주 류씨로 소개됩니다. 정치인으로 제4·5·6·8대 국회의원 유일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한 류청, 제6·9~12대 국회의원 유치송, 제2대 국회의원 류기수(용인 출생, 손자 유기홍은 제17·19·21대 국회의원), 언론인 류혁인 등도 이름이 오릅니다.

참고 영상

전주 류씨 조형물 (뿌리공원 조형물 번호 188) | 한국인의 성씨
뿌리 1부 류습, 조선의 아침 | scriptorium
뿌리 2부 전주 류씨 가문의 시작 | scriptorium

우리 전주 류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전주)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전주 류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함께 보면 좋은 글

가계도 무료로 그리는 법온라인 족보 만들기 단계별 가이드 본관·파·항렬 완벽 정리뜻과 세대 정리법

전주 류씨 종친회

전주 류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전주 류씨 족보·가계도 정보 추가/수정 요청하기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