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때의 우의정, 서성의 맏아들, 호는 만사, 만사공파의 파조

| 생몰 | 1573 ~ 1645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대구 서씨 |
서경우(1573~1645)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대구이며, 서성의 맏아들입니다. 자는 시백(施伯), 호는 만사(晩沙)로, 이 호에서 만사공파가 비롯되었다고 전합니다.
1603년(선조 36) 문과에 급제해 가주서로 관직을 시작했고, 승정원 주서와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공조·병조좌랑, 형조정랑 등을 거쳤습니다. 세자시강원 문학과 지평·정언을 지냈으나 광해군 때 대북 세력에 의해 관직을 박탈당했다가 다시 예조참의가 되었습니다. 이후 승지·대사간·이조참판·대사헌·경기도관찰사·대사성 등 요직을 두루 맡았습니다.
인조 때 형조판서를 거쳐 1644년 우의정에 올랐으며 이듬해인 164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초상과 함은 대한민국 보물 제189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들 서원리는 함경도관찰사를 지냈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서문중이 이 집안으로 양자로 들어와 가계를 이었습니다.
1603년 문과에 급제한 뒤 광해군 때 한때 관직을 빼앗겼으나, 인조 때 대사헌·이조참판·형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서경우 초상 및 함은 대한민국 보물 제1897호이며, 서문중 초상 및 함(보물 제1898호)과 함께 대구 서씨 가문의 초상 유산으로 소개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서원리(함경도관찰사)와, 양자로 가계를 이은 서문중(영의정)이 있습니다.
서성의 맏아들로 인조 때 우의정을 지냈고 호는 만사입니다.
서경우의 호 만사에서 이름을 따 만사공파가 갈라졌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