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진군을 지켜 왕건을 도운 고려 개국공신, 벽진 이씨의 시조
| 생몰 | 858 ~ 938 |
| 시대 | 후삼국·고려 초 |
| 본관 | 벽진 이씨 |
이총언(李悤言, 858~938)은 신라 말 도적이 들끓던 때 벽진군(碧珍郡, 오늘날 경북 성주 일대)을 지켜 백성을 안정시킨 호족으로, 벽진 이씨의 시조입니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운 뒤 힘을 합해 혼란을 평정하자고 제안하자 기뻐하며 아들 이영(李永)에게 군사를 주어 보내 후백제와의 전쟁을 돕게 했습니다. 이영은 당시 열여덟 살이었고, 태조는 대광 사도귀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습니다. 재물과 군량을 비축해 후삼국 통일에 이바지한 공으로 벽진장군에 임명되었으며, 벽진백(碧珍伯)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938년(태조 21) 8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가 고향 성주군 수촌에 있었다고 하나 소실되었고, 뒤에 명문전이 발견되어 묘소가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후손들은 벽진군을 본관으로 삼아 벽진 이씨가 되었습니다.
벽진군은 오늘날 성주군 벽진면 일대를 포함하는 옛 고을로, 태조가 다섯 가야의 이름을 고칠 때 벽진가야 또는 성산가야라는 이름을 부여해 여섯 가야 가운데 하나로 와전되었다고 합니다. 이총언의 근거지가 바로 이 벽진군입니다.
경북 성주군 수촌에 있던 묘소가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아들 이영이 왕건의 후백제 정벌에 종군했습니다. 후손에 생육신 이맹전, 이장곤, 이항로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본관 벽진 이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