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의 한 사람,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 (호 백옥헌)

| 생몰 | 1417 ~ 1456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한산 이씨 |
이개(李塏, 1417~1456)는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관리로 사육신의 한 사람입니다. 본관은 한산, 자는 청보(淸甫) 또는 백고(伯高), 호는 백옥헌(白玉軒)이며 목은 이색의 증손자입니다. 할아버지는 이색의 셋째 아들 이종선, 할머니는 양촌 권근의 딸이었고, 아버지는 이계주, 어머니는 진명례의 딸입니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다고 전합니다.
1436년(세종 18) 친시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했고 1441년 집현전 학자가 되어 저작랑으로 『명황계감』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신숙주·성삼문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도 참여했고, 1444년에는 운회를 언문으로 번역하는 일에 참여해 세종에게 상을 받았습니다. 1447년 문과 중시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해 사가독서를 했으며, 같은 해 강희안·최항·성삼문 등과 『동국정운』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문종 때는 좌문학으로 세자 홍위(훗날 단종)에게 소학을 가르쳤고, 문종으로부터 세자를 잘 이끌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1455년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1456년 집현전 직제학으로서 성삼문·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꾀했으나, 성균관사예 김질의 고변으로 계획이 드러나 체포되었습니다. 세조가 옛 친구라며 회유하고 인두로 고문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법전의 어디에 그런 형벌이 있느냐고 따졌다고 전합니다. 형장으로 가며 "홍모처럼 가벼이 여겨지는 곳에는 죽는 것도 오히려 영광"이라는 뜻의 시를 지었고, 거열형으로 39세에 순절했습니다. 1758년(영조 34)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처음 의열이었다가 충간으로 고쳐졌습니다.
그의 시와 글씨는 당대에도 알려졌으며, 단종을 가르친 스승으로서의 인연이 거사 가담의 배경으로 설명됩니다. 직계 후손이 끊겨 제사는 후세 사람들과 서원이 이어 왔습니다. 드라마 『한명회』『왕과 비』『공주의 남자』 등 여러 작품에 등장해 대중에게도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441년 집현전에 들어가 『명황계감』을 편찬하고 훈민정음 창제와 『동국정운』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세종은 운회를 언문으로 옮기는 일에 참여한 공으로 그에게 상을 내렸습니다.
1456년 성삼문·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다 김질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매부 허조는 집에서 목을 매 죽었다고 전합니다.
1758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대구 낙빈서원, 한산 문헌서원, 충주 노운서원, 과천 민절서원, 의성 충렬사 등에 배향되었습니다.
시신은 다른 육신과 함께 누군가 몰래 수습해 노량진 근처에 묻었다고 전합니다. 사진은 『이개의 묘』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공개한 것입니다.
직계 후손은 끊겼으나 숙부 이계전·이계원 등의 후손이 전합니다. 토정 이지함은 종증손, 아계 이산해와 이산보는 종고손에 해당합니다.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고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했습니다.
이색의 증손자입니다.
직계 후손은 끊겼고, 숙부 이계전 등의 후손이 문중에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