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이조판서·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문신, 문혜공파의 파조 (호 한재)
| 생몰 | 1371 ~ 1440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한산 이씨 |
이맹균(李孟畇, 1371~1440)은 고려 말에서 조선 세종 때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 자는 사원(士原), 호는 한재(漢齋), 시호는 문혜(文惠)입니다. 목은 이색의 손자이고 지밀직사사 이종덕의 아들이며, 한산 이씨 문양공파에서 갈라진 문혜공파의 파조로 받들어집니다. 시호는 학문에 힘쓰고 묻기를 좋아한 점을 문(文), 성품이 부드럽고 백성을 사랑한 점을 혜(惠)로 풀이합니다.
1385년(우왕 11) 문과에 합격해 성균직학, 사재소감, 내서사인, 예문관직제학 등을 지냈습니다. 1406년(태종 6)에는 사헌부집의로 있으면서 사송을 지체한 죄로 원주에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었습니다. 이후 성균관대사성, 충청도관찰사, 판한성부사를 거쳤고, 세종 때 명나라에 사은부사·진위사로 여러 차례 다녀왔습니다. 예조·공조·이조·병조판서를 두루 맡았고 1427년에는 세자를 가르치는 좌빈객이 되었습니다.
1437년 예문관대제학 겸 판이조사가 되었는데, 이조 판서의 일을 판이조사로 겸하는 일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우찬성과 좌찬성을 지냈습니다. 성품이 온화하고 가업을 일찍 이어받아 시문이 전아했다고 평가됩니다. 말년인 1440년 부인 이씨가 심한 질투로 종을 죽인 사건으로 파면되어 황해도 우봉현으로 쫓겨났고,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개성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은 없었다고 기록됩니다.
판이조사 겸직의 첫 사례를 남겼다는 점은 그가 세종 때 인사 행정의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조부 이색과 아버지 이종덕으로 이어진 학문 가풍 속에서 시문이 전아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한산 이씨 문양공파가 9세에 사윤공파·문혜공파·정언공파·판중추공파로 갈라질 때 한 갈래를 연 인물로 기록됩니다.
조부는 이색이고 아버지는 맏아들 이종덕입니다. 이맹균은 9세에서 문양공파 아래 문혜공파를 열었습니다.
1421년 사은부사, 1425년 진위사, 1429년 사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조·공조·이조·병조판서를 두루 지냈다고 전합니다.
1437년 예문관대제학으로서 판이조사를 겸한 것이 판이조사 겸직의 시작으로 기록됩니다.
묘소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440년 귀환 길에 개성부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자식이 없었다고 기록되며, 문혜공파는 그의 형제 항렬 계통을 포함해 문양공파에서 갈라진 파로 이어집니다.
세종 때 이조판서와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문신으로 문혜공파의 파조입니다.
호는 한재, 시호는 문혜입니다.
1440년 부인 일로 파면되어 황해도 우봉현에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개성부에서 별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