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박씨(慶州 朴氏) — 신라 파사 이사금의 38세손으로 전하는 박상(초명 박앙)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월성 박씨·계림 박씨와는 계보가 다른 별개의 본관으로 구분됩니다.
신라 파사 이사금의 38세손으로 전하는 박상(초명 박앙)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월성 박씨·계림 박씨와는 계보가 다른 별개의 본관으로 구분됩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경주 박씨 인구는 약 22,26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경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경주 박씨는 대(代)가 내려오며 여러 계파(파)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는 보유하신 족보나 문중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파와 항렬의 개념은 본관·파·항렬 가이드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상(시조·고려 말~조선 초 문신, 계유정난 후 은거), 박자신(박상의 아버지·예문관 응교), 박세리(골프 선수·LPGA 투어에서 활약, 나무위키 기준 경주 박씨)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경주 박씨(慶州 朴氏)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며, 신라 제5대 파사 이사금(婆娑尼師今)의 38세손으로 기록된 박상(朴像, 초명 박앙 朴昻)을 시조로 모십니다. 나무위키는 같은 인물의 이름을 박앙(朴盎)으로 적고 박제상의 33세손이라고도 설명합니다. 한자 표기와 세대 수는 자료마다 달라 정확한 값은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시조 위로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도시조로 받듭니다.
《경주박씨세보》에 따르면 박상은 고려 말 예문관 응교와 국자직학을 지낸 박자신(朴自臣)의 아들입니다. 본관을 경주로 정한 경위에 관한 설명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경주 박씨는 신라 박씨 왕 가운데 파사 이사금 계통(박제상 등과 같은 계열)에서 나왔다고 보는 본관입니다. 반면 월성 박씨는 경명왕의 여덟 왕자 중 막내 월성대군 박언의의 후손이라 전하는 경명왕계 본관이고, 계림 박씨는 경애왕계 중시조 박순현에서 이어진다고 전합니다. 월성·계림은 모두 경주의 옛 이름이어서 한때 서로 뒤섞여 쓰였지만, 계보가 다르므로 현재는 별도 본관으로 취급합니다. 나무위키에는 경주 박씨를 '월성 박씨라고도 한다'고 적은 부분과 '월성 박씨와 계보가 다르다'는 부분이 함께 있어 서술이 일관되지 않으며, 이 사이트에서는 두 본관을 별개로 구분하고 검색도 분리합니다.
위키백과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경주 박씨를 22,262명으로 적고 있습니다.
박상은 1451년(문종 1)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저작을 지냈습니다. 1453년 계유정난 이후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은거했다고 전해집니다. 만년에는 경남 함안 서쪽 평광리의 백이산(伯夷山) 아래에 머물렀다고 하며, '백이산'이라는 산 이름에는 절의를 지킨 백이를 기리는 뜻이 담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만 이곳이 문중의 세거지로 이어졌다는 명시적 기록은 위키백과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사용자 제공 요약에는 후손이 번성했다고 되어 있으나 이 부분은 공개 자료로 검증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는 박심문(충정공)이 박상과 함께 수양산에서 도의를 강론했다고, 생육신 김시습이 함께 산에 들어갔다고 언급합니다. 이 인물들이 경주 박씨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 《경주박씨세보》의 일부가 불에 타 소실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때문에 시조 이래 세계(世系) 가운데 일부는 복원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공개 자료에서 파(派)에 관한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파조가 확인되는 파별 카드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물로는 시조 박상이 알려져 있습니다. 골프 선수 박세리가 경주 박씨라고 나무위키에 적혀 있습니다. 박혁거세는 인물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종친회 주소와 항렬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경주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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