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설씨(慶州 薛氏) —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며, 신라 6부 촌장 호진(설거백)을 시조로, 학자 설총을 중시조로 모신다고 전해지는 토착 설(薛)씨입니다. 위구르계 설손의 후손인 경주 설(偰)씨와는 한자와 뿌리가 다르며, 순창 설씨는 이 계통에서 갈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며, 신라 6부 촌장 호진(설거백)을 시조로, 학자 설총을 중시조로 모신다고 전해지는 토착 설(薛)씨입니다. 위구르계 설손의 후손인 경주 설(偰)씨와는 한자와 뿌리가 다르며, 순창 설씨는 이 계통에서 갈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경주 설씨 인구는 약 3,407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설씨라도 본관(경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파조가 확인되는 파 없음(공개 자료 기준)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설총(신라 학자, 이두 정리), 설계두(신라 출신 당나라 장수), 설경성(고려 의관·찬성사), 설문우(고려 성균대사성), 설장수·설손·설미수(위구르계 경주 설(偰)씨)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경주 설씨(慶州 薛氏)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설(薛)씨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이사금 9년(서기 32년) 여섯 마을의 이름을 부(部)로 고치고 성씨를 내렸는데, 명활산 고야촌이 습비부가 되면서 그 촌장 호진(虎珍)이 설(薛)씨 성을 받았다고 합니다. 족보에서는 이 호진을 설거백(薛居伯)이라 하여 시조로 모시며, 신라 시대의 학자 설총을 중시조로 받듭니다. 6부 사성 기사는 후대에 소급해 정리된 것이라는 학계의 견해도 있어, 시조 계보는 전승으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한국에는 한자가 다른 두 계통의 설씨가 있고, 둘 다 경주를 본관으로 하므로 혼동하기 쉽습니다.
첫째는 이 글에서 다루는 설(薛)씨로, 신라 6부 촌장 호진을 뿌리로 하는 토착 성씨입니다. 둘째는 설(偰)씨로, 위구르 출신 설손(偰遜)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원나라에서 고려로 건너온 뒤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은 외래 계통입니다. 두 설씨는 뿌리가 전혀 다르며, 통계청 2015년 조사에서 설(偰)씨는 2,937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순창 설씨는 설(薛)씨 쪽에서 갈라진 본관이므로 위구르계 설(偰)씨와 관련이 없다고 설명됩니다. 아래 별도 항목에서 설(偰)씨를 간단히 정리합니다.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경주 설(薛)씨는 3,407명으로 집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설(薛)씨의 순창 설씨(35,825명)가 훨씬 많은데, 이는 31세손 설인손 또는 36세손 설자승이 본관을 순창으로 분관한 것으로 전해지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설(薛)씨 전체는 2015년 기준 약 4만 2천 명으로 소개됩니다. 경주 설씨의 구체적 세거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름난 인물은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설총입니다. 이두를 정리해 집대성하고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올렸다고 하며, 고려 현종 때 홍유후(弘儒侯)로 추증되어 문묘에 배향되었습니다. 신라 사람 설계두(薛罽頭)는 골품제에 불만을 품고 621년 당나라로 건너가 645년 고구려 원정에서 전사했다고 『삼국사기』 열전에 전합니다. 다만 설계두의 본관과 후손 계통은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경주 설씨와의 관계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의관으로 충렬왕의 가까이에서 일하고 찬성사에 올랐다는 설경성이 알려져 있으며, 그의 아들 설문우는 과거에 급제해 성균대사성을 지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무과 급제자 10명과 생원·진사 7명을 배출했다고 소개됩니다. 파에 대해서는 공개 자료에서 파조가 확인되는 정보를 찾지 못했습니다. 순창 설씨는 참판공파·문숙공파·참의공파·대사성공파·진사공파·옥천군파·군수공파·삼지당공파로 나뉘는 것으로 소개되므로, 순창 쪽 후손은 해당 본관 족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손은 위구르 사람으로 원나라에서 벼슬하다 1358년경 홍건적을 피해 고려에 귀화했고, 공민왕에게서 집과 토지를 받고 부원후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아들 설장수는 명나라 사신으로 여러 차례 다녀온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건국 후 계림(경주)을 본관으로 받았습니다. 설미수·설경수 등 형제와 손자 설순도 조선 초 관직에 올랐습니다. 이들의 후손이 오늘날 경주 설(偰)씨로, 2000년 3,269명, 2015년 2,937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경주·순창 설씨 대종회가 관련 단체로 소개되지만 공식 사이트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경주 설(薛)씨의 항렬로는 41세부터 기(基)·진(鎭)·원(源)·표(杓)·열(烈)·재(在)·현(鉉)·택(澤)·식(植)·환(煥)·규(圭)가 이어진다고 소개되지만, 표기 오류 가능성이 있어 족보 확인이 필요합니다.
경주 설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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