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여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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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여씨(咸陽 呂氏) — 경상남도 함양을 본관으로 하며, 당나라 한림학사로 877년 신라에 건너왔다고 전하는 여어매를 시조로, 고려 대장군 여임청을 중시조로 모시는 성씨입니다. 함양의 오래된 토성으로, 여(呂)씨 가운데 가장 큰 본관이며 조선 초 형조판서 여칭, 숙종 때 영의정 여성제, 독립운동가 여운형 등을 배출했습니다.

인구 — 약 34,835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함양 여씨란

경상남도 함양을 본관으로 하며, 당나라 한림학사로 877년 신라에 건너왔다고 전하는 여어매를 시조로, 고려 대장군 여임청을 중시조로 모시는 성씨입니다. 함양의 오래된 토성으로, 여(呂)씨 가운데 가장 큰 본관이며 조선 초 형조판서 여칭, 숙종 때 영의정 여성제, 독립운동가 여운형 등을 배출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함양 여씨 인구는 약 34,83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여씨라도 본관(함양)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주요 파(派)

함양 여씨는 대(代)가 내려오며 여러 계파(파)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는 보유하신 족보나 문중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파와 항렬의 개념은 본관·파·항렬 가이드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 인물

여어매(시조), 여임청(중시조·고려 대장군), 여칭(조선 초 형조판서), 여자신(병조판서·청백리), 여우길(일본 사신·포로 쇄환), 여이징(대사헌), 여성제(숙종 때 영의정), 여규형(한학자), 여운형(독립운동가), 여운홍(정치인), 여운계(배우), 여홍철(체조 올림픽 은메달)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함양 여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함양 여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여운형 (1886~1947)독립운동가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시조와 본관의 유래

함양 여씨(咸陽 呂氏)는 경상남도 함양군을 본관으로 합니다. 시조 여어매(呂御梅)는 중국 내주(萊州) 사람으로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지냈는데, 황소의 난을 피해 877년(신라 헌강왕 3)에 신라로 건너왔다고 전해집니다. 신라에서 전서(典書)를 지냈다고 하며, 처음에는 지금의 경북 성주 일대(옛 성산)에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어매의 후손은 뒤에 성산 여씨·성주 여씨와 함양 여씨로 본관이 나뉘었습니다. 성주(성산) 여씨는 고려 말 삼중대광 여양유(呂良裕)를, 함양 여씨는 고려의 대장군 여임청(呂林淸)을 중시조로 받듭니다. 디지털함양문화대전에 따르면 여임청의 후손 여자장·여존혁 형제와 여광유(呂光有)의 후손들이 함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습니다. 시조의 계대는 족보 전승에 바탕을 둔 설명입니다.

함양의 토성, 대장군 여임청

『경상도지리지』(1425)와 『세종실록지리지』는 함양군의 토성으로 여(呂)·오(吳)·서(徐)·박(朴)·조(曺)씨를 들고 있어, 여씨가 함양의 오래된 토착 성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 임호(林湖)마을은 처음에 '여림청'이라 불렸다고 하며, 2세 대장군 여임청이 고려 중기에 터를 잡은 함양 여씨의 본거지로 전해집니다.

여임청은 나라를 위해 순절해 함양군이 묘에 제사를 지내고 묘지기를 두었다고 전하며, 고려 예종 때 여진 정벌 무렵의 일로 짐작하는 설명이 있습니다. 오래 돌보지 않은 그의 묘를 함양군수 이서구가 고쳐 쌓고 제사를 지내자 고을이 평안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시조 여어매의 묘는 실묘해 혼백만 모신 초혼장으로 봉분을 세웠다고 합니다.

고려·조선의 인물

『고려사』에서 확인되는 함양 여씨 인물로는 여위(呂渭), 여칭(呂稱), 여극인(呂克禋)이 있습니다. 여칭(1351~1423)은 고려 말 전라도안렴사를 지내고 조선 건국 뒤 강원도관찰사·형조판서·지의정부사를 역임했으며, 1404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 종계변무에 힘썼습니다. 시호는 정평(靖平)입니다.

여칭의 증손 여자신(呂自新)은 무과 출신으로 여러 도의 관찰사를 거쳐 중종 때 병조판서에 올랐고 청백리로 이름났습니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한 여우길(呂祐吉)은 임진왜란 뒤 사신으로 일본을 오가며 포로 쇄환에 힘썼고, 여유길(呂裕吉)의 아들 여이징(呂爾徵)은 대사헌·부제학·도승지 등을 지냈습니다. 숙종 때 여성제(呂聖齊, 1625~1691)는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33명, 무과 급제자 27명을 배출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근현대의 인물

여규형(呂圭亨)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한 한학자로 시·서화에 능했고 『춘향전』을 희곡으로 고쳐 쓰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여운형(呂運亨, 1886~1947)은 여우길의 11대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생 여운홍(呂運弘)도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현대에는 배우 여운계, 체조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홍철 등이 함양 여씨로 소개됩니다.

세거지와 인구

집성촌으로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경북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 전남 담양군 무정면 동산리·정석리 등이 꼽힙니다. 본관지 함양에는 함양읍 신관리 관변마을·삼산리 삼휴마을, 휴천면 호산리 임호마을 등이 함양 여씨와 관련된 마을로 전합니다.

인구는 2000년 8,040가구 25,667명, 2015년 34,835명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같은 해 성주 여씨 13,467명, 성산 여씨 9,494명과 함께 여(呂)씨의 대부분을 이룹니다. 근래에는 같은 뿌리인 성주(성산) 여씨와 함께 전국 종친회를 꾸린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항렬자

위키백과에 정리된 항렬자는 24세부터 영(永)·동(東)·섭(燮)·규(圭)·현(鉉)·운(運)·구(九)·인(寅)·수(壽)·성(成)·희(熙)·병(秉)·재(宰)·정(廷)·조(肇)·종(鍾)·준(準)·상(相)·환(煥)·기(基) 순입니다. 여운형의 '운(運)'이 29세 항렬입니다. 파·문중마다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우리 함양 여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함양)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함양 여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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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여씨 종친회

함양 여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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