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정씨 족보·가계도 온라인으로 만들기

진주 정씨(晉州 鄭氏) —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며, 정예·정자우·정장·정헌 등을 시조로 하는 여러 계통이 '진주 8정'을 이루는 것으로 전해지는 성씨입니다. 단종 때 우의정 정분,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룡, 학자 정경세 등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 약 324,521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진주 정씨란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며, 정예·정자우·정장·정헌 등을 시조로 하는 여러 계통이 '진주 8정'을 이루는 것으로 전해지는 성씨입니다. 단종 때 우의정 정분,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룡, 학자 정경세 등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진주 정씨 인구는 약 324,52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정씨라도 본관(진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주요 파(派)

충장공파, 은열공파, 공대공파, 우곡공파, 어사공파, 첨정공파, 지후공파, 내부사공파

충장공파 (忠莊公派)

충장공파는 단종 때 우의정을 지내고 계유정난 뒤 화를 입은 정분(鄭苯)을 파조로 하며, 시호 충장(忠莊)에서 파 이름을 땄습니다. 정분은 진주 정씨 가운데 정예(鄭藝)계에서 갈라진 인물로, 시조 쪽 세계로는 정시양의 14세손이라는 설명이 있고 같은 계통의 첨정공파·내부사공파·화헌공파 등과 함께 '예계'의 큰집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정분은 세종·문종·단종 3대를 섬기며 호조판서·우찬성·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고, 토목·건축에 밝아 숭례문 개축 등에 관여했다고 전해집니다. 문종이 어린 세자를 부탁한 대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이 오르며, 계유정난(1453) 때 하삼도 도체찰사로 내려가 있다가 유배되어 낙안에서 생을 마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조 때 복관되고 충장의 시호를 받았으며 사후 장릉 배식 삼상신(三相臣)의 한 사람으로 모셔집니다.

후사는 사촌 정효안의 아들 정지산이 이었다고 하며, 충남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 일대의 이른바 공주계와, 유배 중 낳았다고 하는 정광로의 후손을 내세우는 광양계 사이에 계통 문제가 오래 논쟁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항렬자는 공주계 기준 28세손 영(泳)·중(重)·찬(燦), 30세손 헌(憲)·종(鍾)·일(一) 등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은열공파 (殷烈公派)

은열공파는 호장을 지냈다고 전해지는 정자우(鄭子友)를 시조로 하는 '자우계'의 대표 파로,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에 봉해지고 은열(殷烈)의 시호를 받았다는 정신열(鄭臣烈)을 파조로 합니다. 이 파의 기세조로는 좌우위보승중랑장 정진경이 알려져 있으며, 문익점의 장인으로 목화 보급에 공이 있다고 전하는 정천익이 그의 증손으로 소개됩니다.

항렬자는 23세손 한(漢)·해(海)·제(濟), 25세손 연(然)·병(炳)·형(炯) 등으로 이어진다고 하며, 목사공 문중(진주정씨은열공파목사공문중)이 별도의 종중 조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대공파 (恭戴公派)

공대공파는 정장(鄭莊)을 시조로 하는 '장계'의 파로, 고려 때 첨추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정장의 후손 정척(鄭陟)을 중조로 모십니다. 정척은 조선 전기에 판윤·충청도관찰사·지중추원사 등을 지냈고 서예와 지도 제작에 이름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용자 제공 자료에는 '공대공파'로 되어 있으나 문헌에 따라 한자는 恭戴公派로 적히므로, 문중 족보로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우곡공파 (愚谷公派)

우곡공파는 정예계와 달리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헌계'에 속하며, 시조의 11세손으로 고려 때 대사간을 지냈다고 전해지는 정온(鄭溫)을 파조로 합니다. 호를 딴 우곡(愚谷)이 파명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사공파 (御史公派)

어사공파는 헌계(시조 정헌)의 11세손으로 고려 감찰어사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정택(鄭澤)을 파조로 합니다. 퇴계 학통을 이은 우복 정경세가 이 파 출신으로 소개되며, 그 후손은 경북 상주 일대에 세거해 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사공파종회가 별도로 운영됩니다.

첨정공파 (僉正公派)

첨정공파는 정예계의 일세조 정시양의 증손으로 소개되는 정중공(鄭仲恭)을 파조로 하며, 고려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광복군 활동 등 독립운동가 가운데 이 파 출신 인물이 있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지후공파 (祗候公派)

지후공파는 정예계에 속하며, 고려 때 지후(祗候)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정신을 파조로 합니다. 일부 문헌은 파조의 이름을 鄭侁으로, 파명 한자를 祗侯公派로 적기도 합니다.

내부사공파 (內府事公派)

내부사공파는 고려 때 판내부사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정안교(鄭安校)를 파조(중시조)로 합니다. 기록에 따라 정안교를 정수규의 조부 정안사의 동생으로 보기도 하고 정중공의 손자로 보는 설도 있어 세계 이해가 엇갈립니다. 파명은 內府事公派 또는 內副使公派 등으로 적히기도 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정이오(여말선초 문신·대제학), 정분(단종 때 우의정), 정척(조선 전기 문신·서예가), 정성근(성종 때 청백리), 정경세(조선 학자·대제학), 정기룡(임진왜란 명장·삼도통제사), 정천익(문익점의 장인·목화 보급)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시조와 본관의 유래

진주 정씨(晉州 鄭氏)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진양 정씨(晉陽 鄭氏)와 같은 계통으로 다루어집니다. 부산·경남에서는 진양, 그 밖의 지역에서는 진주로 더 많이 부른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6촌 가운데 자산 진지촌의 촌장 지백호(智伯虎)를 정씨의 원조로 삼지만, 이후 세계가 이어지지 않아 시조를 달리하는 여러 계통으로 나뉘어 왔습니다.

통설로는 정예(鄭藝, 영절공)·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을 각각 시조로 하는 네 계통이 알려져 있고, 이들 아래 흔히 '진주 8정'으로 불리는 여러 파가 있습니다. 본관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에서 비롯해 통일신라와 고려 진주목, 조선 진양대도호부를 거쳐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로 통합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는 진주목의 토성으로 정·하·강·소 4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구와 세거지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진주 정씨는 약 19만 7천 명, 진양 정씨는 약 12만 7천 명으로 따로 집계되어, 합하면 약 32만 5천 명입니다. 경남 진주시 사봉면·진성면, 남해군 서면 정포리, 합천군 가야면, 하동군 금남면, 전남 광양시·장흥군·화순군·영광군, 전북 고창군, 충남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 강원 홍천군 서면 등이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진주 정씨

정예계의 시조 정예는 고려 삼한벽상공신으로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고 전해지며, 정시양은 문종 때 대제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은열공파의 정신열은 현종 때 진양부원군에 봉해졌다고 하고, 정을보는 공민왕 때의 문신으로 진주 정씨의 실질적 중시조로 일컬어집니다. 목화 보급과 관련해 문익점의 장인 정천익이 널리 언급됩니다.

조선 시대 - 계유정난의 타격과 재기

정이오는 여말선초의 문장가로 『태조실록』 편찬에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아들 정분은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계유정난(1453) 뒤 정분이 화를 입자 정예계 종문이 큰 타격을 받았고, 이후 조선 중후기에 벼슬에 나아간 인물은 다른 계파 출신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정척은 세종·세조 때 관찰사와 중추원 관직을 지냈고, 정성근은 성종 때의 청백한 관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상주에서 정기룡이 상주성 탈환 등으로 명성을 얻었고, 정경세는 의병 활동 뒤 대제학·이조판서까지 올랐습니다.

진주 8정 개요

진주 정씨는 흔히 8개 파, 곧 '진주 8정'으로 불리지만 문헌마다 파의 수와 이름이 조금씩 다릅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충장공파, 은열공파, 공대공파, 우곡공파, 어사공파, 첨정공파, 지후공파, 내부사공파를 다룹니다. 정예계에는 이 밖에 청천군파·화헌공파·제학공파·목사공파 등이 따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시조가 같은 계통인지는 족보마다 다르므로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대표 인물

유적

진주시 신안동에는 정척의 아들로 전해지는 정설과 부인 강씨를 합장한 묘(경상남도 기념물 제252호)가 있다고 하며, 상주에는 정기룡의 묘(경북 기념물 제13호)와 충의사가 있습니다.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는 정분의 정려와 사당이 있고, 정분의 묘는 진주 상대동에 조부·부친과 함께 있다고 전해집니다.

종친회·족보·항렬

진주정씨대종회(jinjuchung.com)를 중심으로 어사공파종회, 은열공파 목사공 문중 등이 별도로 활동합니다. 항렬자는 파마다 다르며, 예를 들어 충장공파 공주계는 28세손 영(泳)·중(重)·찬(燦), 30세손 헌(憲)·종(鍾)·일(一)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강·소씨와의 통혼을 꺼린다는 서술도 있습니다.

계파와 세계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우리 진주 정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진주)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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