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박씨(順天 朴氏) — 후백제 견훤의 사위로 고려 개국공신이 된 박영규를 시조로 전하는 본관입니다.
후백제 견훤의 사위로 고려 개국공신이 된 박영규를 시조로 전하는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순천 박씨 인구는 약 107,53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순천)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문숙공파, 충정공파, 의주목사공파, 진사공파, 부위공파, 검열공파
문숙공파는 문숙공 박석명(朴錫命, 1370~1406)을 파조로 합니다. 박석명은 공민왕 때 평양부원군에 봉해진 박천상(朴天祥)의 손자이자 밀직부사 박가흥(朴可興)의 아들로, 공양왕의 아우 왕우의 사위였던 까닭에 조선 개국 후 한동안 은거했다가 정종 때 다시 등용되었습니다. 좌명공신에 책록되어 평양군에 봉해졌고, 황희를 승지로 천거한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셋째 아들 박거소의 아들 박중선(朴仲善)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적개공신 1등에 오르고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박중선의 아들 박원종(朴元宗)은 중종반정을 주도하고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충정공파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을 파조로 합니다. 박팽년은 대제학을 지낸 박중림(朴仲林)의 아들로 집현전 학사를 거쳐 형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아버지·형제들과 함께 화를 입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자 박일산(朴一珊, 초명 박비)이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에 자리 잡아 후손이 560여 년간 세거하였으며, 이곳에 박팽년 등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가 있습니다. 정조 때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박기정(朴基正)도 박팽년의 후손입니다.
의주목사공파는 박유성(朴柳星)을 파조로 합니다. 박유성은 박천상의 셋째 아들로 개성판윤을 지낸 판윤공 박가권(朴可權)의 맏아들입니다.
이 파는 다시 박인손(朴仁孫)의 승사랑공파, 박예손(朴禮孫)의 사맹공파, 박신손(朴信孫)의 주부공파로 나뉘었습니다.
진사공파는 판윤공 박가권(朴可權)의 둘째 아들 박두성(朴斗星)을 파조로 합니다. 형 박유성의 의주목사공파와 함께 박천상의 셋째 아들 박가권 계통에서 갈라진 파입니다.
부위공파는 박성금(朴成琴)을 파조로 하는 순천 박씨의 한 파입니다. 박팽년이 태어난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은 600여 년에 걸친 순천 박씨 세거지로, 이곳에는 부위공파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검열공파는 박영년(朴永年)을 파조로 합니다. 박팽년의 아우로 알려져 있으며, 단종 복위 사건에 연좌되어 화를 입었다고 전합니다. 아들 박신(朴信)이 유배된 뒤 청주·연기 일대에서 가문을 다시 일으켰다고 소개됩니다. 파조의 한자 이름과 계보 세부는 자료마다 달라 족보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박영규(시조·고려 개국공신), 박숙정(중시조·보문각 대제학), 박석명(좌명공신·문숙공파 파조), 박중선(적개공신·병조판서), 박원종(중종반정 주역·영의정), 박팽년(사육신), 박준규(국회의장), 박은빈(배우), 박노식(성우)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순천 박씨(順天 朴氏)는 전남 순천을 본관으로 하며, 후백제 견훤의 사위였다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운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모십니다. 박혁거세를 도시조로 삼는 다른 박씨와 마찬가지로 신라 박씨의 후예라고 하지만, 박영규 이전의 상계는 기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키백과와 대종회 쪽 설명에 따르면 고려 충숙왕 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박숙정(朴淑貞)을 중시조로 보고 그 아래로 계대를 헤아립니다. 본관 득관은 고려 정종 때 정승을 지내 평양부원군에 봉해진 박난봉(朴蘭鳳)에 근거한다고 하는데, '평양'은 순천의 옛 이름이어서 조선 시대 인물의 봉작에도 '평양군'이 쓰였습니다. 박난봉과 박숙정 사이의 계보는 실전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순천 박씨는 약 10만 5천 명으로 집계되며(위키백과 본문 수치이며 정보상자에는 107,531명으로 적혀 있어 자료 간 차이가 있습니다), 박씨 본관 가운데 밀양·반남·함양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로 소개됩니다. 1985년 75,888명, 2000년 87,631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집성촌으로는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 전남 보성 벌교읍, 전북 정읍 정우면, 익산 삼기면, 충북 청주, 경북 고령·성주·영양·군위, 경남 합천, 경기 남양주 와부읍·평택 팽성읍, 강원 인제 등이 거론됩니다. 대전 동구 가양동은 박팽년이 태어난 곳으로, 600여 년 세거지로 소개됩니다.
박영규는 견신검 세력 아래에서 견훤과 연락을 이어 가다 936년 일리천 전투 때 고려에 귀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세 딸이 왕실에 들어가 동산원부인은 태조의 후비, 문공왕후와 문성왕후는 정종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광종 때 손자 경춘원군이 처형되는 등 외척의 영향력이 줄었고, 이후 고려 시대 기록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 시기의 사실관계는 자료마다 표현이 달라 족보와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 초에는 박석명이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에 올라 평양군에 봉해졌고, 그의 후손 박중선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적개공신 1등으로 병조판서·이조판서를 지냈습니다. 박중선의 딸은 월산대군의 부인(승평부부인)이 되었으며, 아들 박원종은 1506년 중종반정을 주도해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한편 박팽년은 집현전 학사로 단종 복위를 꾀하다 1456년 화를 입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자가 대구 달성의 묘골에 정착해 충정공파의 터전을 이루었다고 전합니다(손자 이름은 박일산·박일신 등으로 자료마다 달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소수 벌열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순천 박씨의 중앙 진출은 줄었다고 평가되며, 이괄의 난 때 전사한 박영서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문과 급제자는 35명, 상신은 1명으로 소개됩니다.
중시조 박숙정의 5세손 대에서 19개 파로 갈라졌다고 하며, 문숙공파·군수공파·부정공파·의주목사공파·진사공파·승지공파·경력공파·생원공파·제주목사공파·판관공파·감사공파·충정공파·교리공파·수찬공파·박사공파·검열공파·전직공파·인의공파·부위공파가 꼽힙니다. 문숙공파(박석명)에서 박중선·박원종이, 충정공파(박팽년)에서 육신사가 있는 묘골 세거 후손이 나왔습니다. 일부 파조의 이름은 자료에 따라 다르게 적혀(예: 군수공파 파조를 박숙명 또는 박순명으로 표기)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판관공파는 박계원·박견원 등 파조 표기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고려의 박영규·박숙정·박천상(공민왕 때 평양부원군), 조선의 박석명·박중림(세종 때 대제학)·박팽년·박중선·박원종·박이장(광해군 때 대사성·대사간)·박광일(숙종 때 왕자의 스승)이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에는 13~15대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가 박팽년의 후손으로 소개됩니다. 연예·문화계에서는 배우 박은빈과 성우 박노식 등이 순천 박씨로 소개되지만 본관은 나무위키 서술에 따른 것으로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고려에서는 태조의 후비 동산원부인, 정종의 왕비 문공왕후·문성왕후가 이 가문 출신이며, 조선에서는 월산대군의 부인 승평부부인, 제안대군의 계비 등 여러 종친가와 혼인했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박씨 족보 전승은 경명왕의 여덟 대군이 각 본관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며, 그중 일곱째 강남대군 박언지의 후손이 순천 박씨라는 설을 전합니다. 그러나 나무위키 등은 이 후손설의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보고, 종친회도 박영규부터 계보를 소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가문은 박영규를 시조로 하는 별도의 계통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순천박씨중앙종친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항렬은 19세 현(鉉), 20세 해(海), 21세 동(東), 22세 노(魯), 23세 규(圭), 24세 종(鐘 또는 鍾), 25세 순(淳)·수(洙), 26세 상(相), 27세 환(煥), 28세 재(在), 29세 호(鎬), 30세 태(泰) 등으로 전해지지만, 파별로 다를 수 있어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박영규~박팽년·박원종다른 파·문중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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