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박씨(蔚山 朴氏) — 고려 개국공신 박윤웅을 시조로 하며, 신라 경애왕의 장남 금성대군 박교순의 후예로 전해지는 울산 본관의 성씨입니다.
고려 개국공신 박윤웅을 시조로 하며, 신라 경애왕의 장남 금성대군 박교순의 후예로 전해지는 울산 본관의 성씨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울산 박씨 인구는 약 26,571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울산)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울산 박씨는 대(代)가 내려오며 여러 계파(파)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는 보유하신 족보나 문중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파와 항렬의 개념은 본관·파·항렬 가이드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윤웅(시조·고려 개국공신), 박유(두문동 72현으로 전함), 박두세(《요로원야화기》 저자), 박계숙·박취문(《부북일기》 저자 부자)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울산 박씨(蔚山 朴氏)는 울산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 개국공신 박윤웅(朴允雄)을 시조로 모십니다. 원시조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입니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박윤웅이 고려 태조 때 큰 공을 세운 덕에 고향 하곡현이 동진현·우풍현과 합쳐져 흥례부로 승격되었다는 기록이 전하며, 이 흥례부가 훗날 울산입니다. 나무위키는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할 때 울산을 함께 귀부시킨 공으로 박윤웅이 흥려백에 오르고 장무공(章武公)의 시호를 받았다고 서술합니다.
나무위키는 울산 박씨를 신라 경애왕의 장남 금성대군 박교순의 후예로 정리합니다. 경애왕은 경명왕의 동생이므로, 경명왕의 여덟 왕자 후손(밀양·고령·함양 박씨 등)과는 갈라지는 경애왕계에 속한다는 것이 전승입니다. 같은 경애왕계에는 계림 박씨(차남 계림대군 박순현)가 있습니다. 이는 가문 전승이며 모든 박씨 본관이 받아들이는 계보는 아닙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2000년 7,033가구 22,427명,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26,571명입니다. 울산을 비롯해 인천 강화군, 충남 예산군, 충북 옥천군, 경북 경산 등에 많이 산다고 하며, 북한 지역에서는 개성과 함경도 부령에 일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확인은 어렵습니다.
족보에 따르면 14세손 박보의 딸이 파평 윤씨 윤보에게 시집갔고, 윤보의 손녀가 고려 충혜왕의 정비가 되었다는 기록이 울산 박씨와 파평 윤씨 족보 양쪽에 있다고 위키백과가 전합니다. 왕비의 신원은 문헌별 확인이 필요합니다.
조선 개국 무렵 박유(朴愉)는 개성에서 충남 예산군 광시면으로 내려와 은거했고,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는다고 합니다. 그의 며느리 현풍 곽씨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시아버지를 정성껏 봉양해 1431년(세종 13) 효부로 인정받았고, 예산 은사리에 정녀비가 세워졌습니다. 숙종 때 한문 소설 성격의 《요로원야화기》를 지은 박두세, 무과에 급제해 함경도에서 근무하며 《부북일기》를 남긴 박계숙·박취문 부자도 울산 박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개 자료에서 파(派)에 관한 정보와 종친회 주소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파조가 확인되는 파별 카드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시조 박윤웅, 두문동 72현으로 전하는 박유, 소설가 박두세, 《부북일기》의 박계숙과 박취문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밖에 박홍(1534~1593)이 울산 박씨로 위키백과에 적혀 있으나 자세한 행적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울산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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