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성 배씨 시조·고려 후기 무신(병부상서 겸 도원수)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분성 배씨 |
배원룡(裵元龍)은 분성 배씨(盆城 裵氏)의 시조로 모셔지는 고려 후기의 인물입니다. 위키백과 계열 자료는 고려 개국공신 무열공 배현경(裵玄慶)의 후손이자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로 적고, 고려 우왕 때 계림부윤과 병부상서 겸 도원수를 지내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후손들은 그를 수관조(受貫祖)이자 1세로 삼아 분성, 곧 김해의 옛 이름을 본관으로 이어 왔습니다.
배현경과의 촌수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위키백과의 분성 배씨 항목은 배현경의 4세손인 배사혁의 아들로 적는 반면, 같은 위키의 성씨 개관과 나무위키 계열 서술에는 6세손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봉작 시기도 공민왕 때라는 서술과 우왕 때라는 서술이 함께 있고, 족보 체계도 보첩에 따라 배원룡을 수관조로 보는 신유보와 그를 3세로 두는 기묘보가 갈립니다. 이번에 이 차이를 하나로 확정하지 못했으니 종친회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자료에는 우왕 11년(1385) 계림부윤으로서 왜구를 토벌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아들로는 감무어사와 전객령을 지낸 배서(裵署), 전리판서를 지낸 배종주(裵宗柱)가 소개되며, 손자 배단은 평장사에 올랐다고 합니다. 후손들은 증손 대에서 구연공파·진사공파·목사공파 등으로 갈라졌다고 전합니다.
경남 합천군 야로면 정대리에는 분성 배씨의 시조 배지타와 배부·배현경·배우·배승고·배원룡, 그리고 배맹후·배명원·배형원·배일장을 제사 지내는 추본사(追本祠)와 명곡사(明谷祠)가 있습니다. 추본사는 조선 중종 32년(1537)에 지었으나 무너져 1948년 지금 자리로 옮겼고, 명곡사는 숙종 1년(1675)에 세운 명곡서원이 서원철폐령으로 헐린 뒤 1938년에 다시 지은 것을 1948년 옮긴 것입니다. 1988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명칭이 현재의 '합천 추본사·명곡사'로 바뀌었습니다.
분성은 김해의 옛 이름입니다. 김해시에는 '분산성(盆山城)'이라는 산성이 사적 제66호로 남아 있는데, 같은 '분(盆)' 자를 쓰는 지명이라 분성 배씨의 본관 이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이 산성이 배원룡과 직접 관련된다는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으며, 이 글의 사진은 지역 풍경으로만 실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고려 후기에 병부상서 겸 도원수를 지내고 분성군에 봉해졌다고 전하는, 분성 배씨의 시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