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학(氣學)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철학자, 호 혜강

| 생몰 | 1803 ~ 187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삭녕 최씨 |
최한기(1803~1879)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철학자·지리학자로 본관은 삭녕 최씨, 호는 혜강(惠岡)·패동입니다. 개성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무과 출신 양부 최광현의 집에서 자랐다고 전합니다. 1825년 생원·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서울에서 학문에 전념했습니다.
세계를 기(氣)로 설명하는 기학을 세워 『신기통』·『추측록』(합본 『기측체의』), 『인정』, 『지구전요』, 『성기운화』 등을 썼고 저술이 1천여 권에 이른다고 전합니다. 사망 연도는 1877년과 1879년으로 자료가 갈립니다.
최한기는 낭장공파 연기공파 최사렴의 후손으로 소개되며, 영의정 최항과는 방계 혈족입니다. 개성의 양반 가문에서 나 무과 출신 양부 최광현의 집에서 자랐다고 전합니다. 생부와 양부 관계, 정확한 파 내 세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825년 생원·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과거 제도의 폐단을 보고 출사를 단념했다고 합니다. 조인영 등 고위 인사의 영입 제의도 거절하고, 서적 수집에 힘써 중국에서 들어온 신간을 두루 읽었다고 전합니다. 1892년에는 사헌부 대사헌 겸 성균관 제주에 추증되었습니다.
기(氣)를 이(理)보다 앞세워 경험과 실증을 중시하는 기학을 세웠습니다. 중국어로 번역된 서양 서적을 바탕으로 지동설과 지구의 자전·공전을 소개했고, 세계 지리서 『지구전요』를 펴냈으며, 김정호의 지도 제작을 도왔다고도 전합니다.
인재를 문벌이 아닌 재능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제자들에게 상업·의술·수공업을 익히도록 권했다고 합니다. 1863년 고종 즉위 뒤에는 통상 개항을 주장했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강화진무사 정기원의 자문에 응했다고 전합니다.
묘소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최병대는 1862년 문과에 급제하였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