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 崔恒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영의정에 오른 집현전 학자, 영성부원군, 호 태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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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09 ~ 1474
시대조선 초기
본관삭녕 최씨

생애 약력

최항(1409~1474)은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삭녕 최씨입니다. 자는 정보(貞父), 호는 태허정(太虛亭)·동량이며, 아버지는 최사유입니다. 낭장공 최선보의 5세손으로 낭장공파에 속합니다. 1434년 알성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해 집현전에서 약 18년간 학자로 일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훈민정음해례』·『용비어천가』·『동국정운』 편찬에 관여했으며, 뒤에 『경국대전』 편찬을 이끌었습니다. 계유정난에 가담해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었고, 세조 즉위 뒤 좌익공신 2등, 성종 때 좌리공신 1등을 받아 영의정에 올라 영성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시호는 문충(文忠) 또는 문정(文靖)으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집안과 성장

최항은 낭장공 최선보에서 충, 윤문, 사유로 이어지는 낭장공파 5세손이며, 아버지 최사유는 1402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문신입니다. 아내는 달성 서씨로, 처남은 『동국통감』·『경국대전』에도 관여한 문장가 서거정이라고 전합니다. 위로는 시조 최천로와 중시조 최유가가 있으나 그 사이 세계는 실전되어 있습니다.

집현전과 훈민정음

1434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고, 1443년 무렵 훈민정음 창제와 이후 『훈민정음해례』·『용비어천가』·『동국정운』 편찬에 참여했다고 전합니다. 명나라에 보내는 표전문을 많이 지은 문장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계유정난과 정승 시절

1453년 계유정난에 가담해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세조 때는 좌익공신 2등에 올라 공조·형조·이조 판서와 우참찬, 좌찬성 등을 지냈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영의정에 오른 해는 자료마다 달라 이 글에서는 연도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40여 년 관직 생활 동안 탄핵을 받은 적도 외직을 맡은 적도 없다고 소개됩니다.

경국대전

1469년 예종 때 『경국대전』 상정소 도제조로서 편찬을 맡았습니다. 그 밖에 『동국통감』, 『고려사』 개찬, 『세조실록』·『예종실록』 편찬에도 관여했다고 하며, 문집으로 『태허정집』이 있습니다.

묘소와 유적

묘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에 있으며 1976년 8월 27일 경기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묘역에는 묘비·문인석·혼유석이 있고, 처남 서거정이 글을 짓고 성임이 글씨를 쓴 신도비가 있으며, 2003년에 같은 양식의 새 신도비가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재실 영모재는 도마리 195번지, 사묘는 197-8번지에 있다고 소개됩니다. 신도비 위치는 자료마다 설명이 달라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후손

맏아들 최영린의 계통은 문정공 종파가 되어 사직공파·최수웅의 통례공파·사정공파로 갈라지고, 둘째 최영호는 찬성공파의 파조가 되었으며 그 손자가 영의정 최흥원입니다. 1894년 문과 갑과 2위 최병직은 최항의 16대손으로, 최명희는 최수웅의 17대손으로 소개됩니다.

묘소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최항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제33호, 1976년 지정). 재실 영모재(도마리 195번지)와 신도비 2기(옛 비와 2003년 새 비)가 있습니다.

후손

아들 최영린(맏아들, 석포공)과 최영호(둘째, 찬성공파 파조)를 두었고, 손자 최수웅(통례공파 파조)과 증손 영의정 최흥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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