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녕 최씨(朔寧 崔氏) —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조선 전기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영의정 최항을 배출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조선 전기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영의정 최항을 배출한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삭녕 최씨 인구는 약 58,14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최씨라도 본관(삭녕)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삭녕 최씨(朔寧 崔氏)는 옛 삭녕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최씨입니다. 시조는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고 전하는 최천로(崔天老)이고, 후손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모십니다. 조선 초기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영의정에 오른 최항과 그 증손 영의정 최흥원, 조선 후기의 실학자 최한기, 소설 『혼불』의 최명희가 이 가문 사람입니다. 위키백과 기준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33명과 영의정 2명을 냈다고 소개됩니다(가문스캐너 집계).
삭녕은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삭녕면 일대와 강원도 철원군 일부에 걸쳐 있던 옛 고을입니다. 고구려 때는 소읍두현으로 불렸다고 하며, 여러 차례 이름과 소속이 바뀌다가 조선 시대에 삭녕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군이 없어지면서 땅이 연천군과 철원군으로 나뉘어 편입되었고, 위키백과는 일부가 개성시 장풍군에 걸친다고도 설명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삭녕이라는 행정구역이 없고, 성씨의 본관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본관이 삭녕이 된 까닭은 중시조 최유가가 노년을 삭녕에서 보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널리 소개됩니다. 한편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은 본관을 강원도 철원군으로 적고, 나무위키는 지금은 북한 땅인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를 발상지로 소개합니다. 자료마다 표현이 달라 정확한 발상지는 족보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시조 최천로는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문하시랑평장사는 고려 시대 재상급 관직입니다. 다만 그 이전의 선계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최흥원이 삼한의 오랜 가문이라는 취지의 친필 기록을 남겼다고 소개되지만, 여러 전란에 문헌이 사라져 고증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최천로의 한자(자료마다 표기가 다름)와 정확한 활동 시기도 자료마다 다릅니다.
중시조 최유가는 고려 명종 때 국자감 대사성과 추밀원부사를 거쳐 참지정사,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고 전합니다(명종 20년 1190년, 명종 24년 1194년 등으로 소개). 이름의 한자도 瑜價, 瑜賈 등으로 갈립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고려사』 원문에서 최유가의 기록을 직접 찾지 못했으므로, 위 내용은 족보와 대종회 계통의 2차 자료를 따른 것입니다.
삭녕 최씨는 최유가 이후 중간 세계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어모군 낭장을 지낸 최선보(崔善甫)와 함경전부사(일부 자료는 회경전 부사)를 지낸 최연(崔珚)을 각각 1세조로 삼아, 낭장공파와 부사공파의 두 갈래로 세계를 이어 왔습니다. 시조와 1세조 사이를 어떻게 연결하는지는 지금 남아 있는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으며, 이는 삭녕 최씨 족보에서도 그렇게 처리된 것으로 소개됩니다.
낭장공파의 세계는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1세 낭장공 최선보, 2세 서승공 최충(崔忠), 3세 전서공 최윤문(崔潤文), 4세 사예공 최사유가 이어지고, 최윤문 아래 다섯 형제(사앙·사홍·사유·사렴·사온)가 나뉩니다. 이 가운데 사앙과 사홍은 후사가 끊겼다고 전하고, 사렴은 연기공파, 사온은 희천공파로 이어집니다.
최항(1409~1474)은 낭장공 최선보의 5세손이며 사예공 최사유의 아들입니다. 즉 시조 최천로와 중시조 최유가에서 최항까지는 '시조 → 중시조 → (실전된 중간 세계) → 1세조 최선보 → 충 → 윤문 → 사유 → 최항'으로 이어지고, 중간 구간은 연결 근거가 없습니다. 최항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4대에 걸친 낭장공파 선대가 있었다는 점은 확인되지만, 그 위가 시조에 어떻게 닿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최사유의 아들들로 참판공 최형(崔衡, 참판공파), 주부공 최화(崔華, 주부공파), 문정공 최항이 있고 부정공 최숭(崔崇)은 아들 대에서 후사가 끊겼다고 전합니다. 최항은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맏아들 최영린(호 석포)의 계통은 문정공 종파가 되어 사직공파(수영)·통례공파(수웅)·사정공파(수걸)로 갈라지고, 둘째 최영호(1457~1481)는 찬성공파의 파조입니다. 최영호의 손자가 영의정 최흥원이니, 최항에서 최흥원까지가 곧 증조·증손 관계입니다.
최한기는 낭장공파 연기공파 최사렴의 후손으로 소개되어 최항과는 형제 계통(최사유와 최사렴이 형제)에 해당합니다. 부사공파는 최연을 1세조로 하여 규정공 시옥, 서령공 수명, 사간공 복린, 지평공 도원으로 이어지고, 지평공의 네 아들(경부·경연·경천·경시)이 교도공파·사정공파·진주파 계통·현감공파(만경파)를 이룬다고 종친회 계통 자료가 정리합니다. 부사공파는 전북 김제 만경 일대에 세거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최씨는 본관이 매우 많은 성씨입니다. 신라 말 학자 최치원을 모시는 경주 최씨, 고려의 해동공자 최충으로 알려진 해주 최씨, 그리고 전주 최씨·강릉 최씨 등은 모두 시조와 계통이 다른 별개의 가문입니다. 같은 최씨라도 본관이 다르면 같은 뿌리로 볼 수 없으니, 먼저 우리 집안 족보의 본관이 삭녕(朔寧)인지 확인하세요. 같은 이름의 최항도 고려 초 문신(972~1024)과 무신정권기 권신(1209~1257)이 따로 있으니, 이 가문의 최항은 1409년에 태어난 조선 초 영의정입니다.
나무위키는 집성촌으로 강원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경기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김포·평택·화성, 전북 남원시 사매면(계수리·서도리), 군산·김제·완주·임실·정읍, 경남 사천·고성 등을 소개합니다. 북한 지역으로는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와 통천군 벽양면 계곡리가 나옵니다. 남원 사매면 노봉마을은 영의정 최항의 손자 최수웅이 은거하면서 대대로 명문을 이룬 삭녕 최씨 세거지로 알려져 있고, 소설 『혼불』의 매안마을 배경이기도 합니다.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에는 사직공파 입향조 최종적의 후손이 살았으며, 그 일대의 '영성뜰'은 최항의 봉호 영성부원군에서 이름이 붙었다고 전합니다.
통계청 집계로 1985년 9,027가구 37,872명, 2000년 12,055가구 38,736명, 2015년 58,142명이었다고 소개됩니다.
종중 업무는 삭녕최씨전국대종회가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누리집 주소는 sakchoi.com 으로 소개됩니다. 다만 이번에 접속하지 못해 연락처와 행사 일정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항렬은 낭장공파와 부사공파가 세대별로 따로 정해져 있고(예: 부사공파 19세는 孝·學), 통합 항렬은 25세부터 40세까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25세 鉉, 26세 洙, 27세 相으로 소개되지만 이후 글자는 확인하지 못했고 파와 지역에 따라 쓰임이 다르니 반드시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최항의 묘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에 있으며 1976년 8월 27일 경기도 기념물 제33호(최항선생묘)로 지정되었습니다. 묘역에는 묘비·문인석·혼유석이 있고, 처남 서거정이 글을 짓고 성임이 글씨를 쓴 신도비가 있다고 하며, 2003년에 같은 양식으로 새 신도비를 세워 나란히 서 있다고 소개됩니다. 도마리 195번지에는 재실 영모재(永慕齋)가, 197-8번지에는 사묘가 있다고 전합니다. 최흥원의 묘 및 신도비는 경기도 파주시에 있으며 2001년 파주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고, 정려각이 있다고 합니다. 최영호의 묘는 파주 월롱면에 있습니다.
낭장공파, 부사공파, 찬성공파, 통례공파, 연기공파, 사직공파, 참판공파, 주부공파, 사정공파, 희천공파, 교도공파, 현감공파
낭장공파는 친어모군 낭장(親禦侮軍郎將)을 지낸 최선보(崔善甫)를 1세조로 하는 삭녕 최씨의 큰 갈래입니다. 시조 최천로와 중시조 최유가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삭녕 최씨는 이 낭장공파와 부사공파 두 갈래로 세계를 이어 왔습니다. 시조와 최선보 사이를 어떻게 잇는지는 자료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종친회 계통 자료에 따르면 세계는 1세 최선보, 2세 서승공 최충, 3세 전서공 최윤문, 4세 사예공 최사유로 이어지며, 최윤문 아래 사앙(부사공)·사홍(선절공)·사유·사렴(연기공)·사온(희천공) 다섯 형제가 있었습니다. 사앙과 사홍은 후사가 없다고 전하고, 사유의 아들 대에 참판공(형)·주부공(화)·문정공(항)이 갈라집니다.
낭장공파 5세손 최항(1409~1474)은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경국대전』 편찬을 이끌었으며 영의정에 올라 영성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증손 최흥원도 영의정을 지냈습니다.
낭장공파 산하에는 참판공파·주부공파·사직공파·통례공파·사정공파·찬성공파·연기공파·희천공파의 8파가 있다고 소개됩니다(나무위키에는 판서공파가 추가로 나오는 판본도 있어 목록은 판본마다 다릅니다). 세거지는 파마다 다르며 경기 광주 퇴촌, 파주, 전북 남원, 세종 전의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파조의 시호·세거지 세부는 대종회와 족보로 확인하세요.
부사공파는 고려 때 함경전부사(含慶殿副使)를 지낸 최연(崔珚)을 1세조로 하는 파로, 만경파라고도 합니다. 일부 자료에는 그의 관직이 회경전 부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는 자료도 있어 1세조의 이름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종친회 계통 자료에 따르면 세계는 1세 부사공(최연), 2세 규정공 시옥(時玉), 3세 서령공 수명(守明), 4세 사간공 복린(卜麟), 5세 지평공 도원(道源)으로 이어집니다. 지평공의 아들 경부(景溥)는 교도공파(진위·춘천·순천파라고도 함), 경연(景淵)은 사정공파(사천파), 경천(景泉)은 진주파 계통, 경시(景時)는 현감공파(만경파)를 이룬다고 정리됩니다. 원문에 둘째와 셋째가 모두 사정공파로 적혀 있어 대응이 분명하지 않으므로 족보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부사공파 9세손 최달하(崔達河)가 임진왜란 무렵 만경현 서면 갈밭에 정착한 이래 후손이 전북 김제 일대에 세거했으며, 대법관을 지낸 최병주가 최연의 21세손입니다. 부사공파의 19세 항렬자는 孝·學으로 소개됩니다.
찬성공파는 영의정 최항의 둘째 아들 최영호(崔永灝, 1457~1481)를 파조로 합니다. 최영호는 예문관 한림을 지내고 1477년 21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사재감정 등을 거쳐 사옹원정에 올랐습니다.
경차관으로 경상도 고성에 파견되었다가 병을 얻어 25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의정부 좌찬성 등에 추증되었습니다. 묘는 경기도 파주 월롱면에 있습니다.
최영호의 손자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최흥원(1529~1603)입니다. 최흥원은 아버지 최수진의 아들이며 영평부원군에 봉해지고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묘 및 신도비가 파주시에 있어 2001년 파주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파의 세거지는 파주 일대가 중심이었다고 보이나, 현재 집성촌 현황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찬성공이라는 파명은 사후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형 최영린의 문정공 종파가 사직공파·통례공파·사정공파로 다시 갈라진 것과 달리 찬성공파는 하나의 파로 이어져 왔다고 보이나, 파 안의 세부 계통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통례공파는 최수웅(崔秀雄)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최수웅은 영의정 최항의 손자이며 맏아들 최영린(석포공)의 아들로 소개됩니다. 삭녕 최씨의 오랜 세거지인 전북 남원 사매면 노봉마을을 처음 연 인물로 전해집니다.
노봉마을은 소설 『혼불』의 매안마을 배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설가 최명희가 최수웅의 17대손이라고 소개됩니다. 통례공이라는 호칭의 유래(통례원의 어떤 관직을 지냈는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연기공파는 낭장공파 4세 사렴(士廉, 연기현감으로 전하나 확인 못 함)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최윤문의 다섯 아들 중 한 사람으로 최사유의 형제입니다. 조선 말기의 실학자 혜강 최한기(崔漢綺)가 최사렴의 후손이며, 최항과는 방계 혈족이 됩니다.
최한기는 개성 출신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무과 출신 양부 최광현의 집에서 자랐다고 전합니다. 이 파의 세거지·집성촌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사직공파는 최수영(崔秀英)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최항의 맏아들 최영린 계통의 문정공 종파에서 갈라진 세 파(사직·통례·사정) 가운데 하나로 소개됩니다.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은 분관·분종이 1500년대에 사직공파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는 최종적(崔宗迪)을 입향조로 하는 사직공파 후손이 대대로 살고 있으며, 그의 증손 최계현(1759~?)은 무과에 급제해 의금부 도사, 훈련원 주부, 영덕현감을 지냈습니다. 입향 시기는 1600년대로 추정되고, 그 일대의 영성뜰은 최항의 봉호에서 이름이 붙었다고 전합니다. 연기군 통계로 1985년 16가구 56명, 2015년 세종시 148명이 확인됩니다.
참판공파는 낭장공파 5세 최형(崔衡)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위키백과는 참판공파의 시조를 최형으로 적고, 종친회 계통 분파도는 최형을 사예공 최사유의 아들(영의정 최항의 형제)로 정리합니다. 즉 낭장공 최선보에서 충, 윤문, 사유를 거쳐 형으로 이어지는 낭장공파의 한 가지입니다.
다만 최형의 생몰년과 참판 임용 사실(어느 조 참판인지), 시호,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거지와 집성촌, 대표 후손 역시 확인된 자료가 없어 적지 않습니다. 참판공파는 나무위키가 낭장공파 산하 파로 꼽는 8파 가운데 하나이며, 낭장공파·부사공파의 갈래 관계는 같은 자료에서 일관됩니다.
삭녕 최씨 전체로는 파별 인구가 공개된 통계가 없고, 대종회도 파별 연락망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누리집 접속 실패로 확인 못 함). 참판공파 후손이라면 종중에서 파보와 항렬표를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설명은 '확인되는 사실만' 적은 것이라 분량이 짧으며, 확인되는 대로 보강할 수 있습니다.
주부공파는 낭장공파 5세 최화(崔華)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위키백과는 주부공파의 시조를 최화로 적고, 종친회 계통 분파도는 최화를 사예공 최사유의 아들(영의정 최항의 형제)로 정리합니다. 파명은 그가 주부(主簿)를 지낸 데서 왔을 것으로 보이나, 어느 관청의 주부였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최화의 생몰년, 시호, 묘소, 세거지와 집성촌, 대표 후손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습니다. 낭장공파 산하 8파 가운데 하나라는 점, 참판공파와 같은 세대(최사유의 아들)에서 갈라졌다는 점만 확인됩니다.
주부공파 후손이라면 종중의 파보와 대종회(삭녕최씨전국대종회)에 세계와 항렬을 문의하세요. 이 설명은 확인된 사실만 적어 짧으며, 추가 자료가 확인되면 보강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주부공파의 파조 최화는 영의정 최항과 형제이므로, 최항의 묘소가 있는 광주 퇴촌 일대나 파주 등 낭장공파 선대의 활동지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추정일 뿐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사정공파는 낭장공파의 문정공 종파에서 갈라진 파로, 최수걸(崔秀傑)을 파조로 합니다. 최수걸은 최영린(석포공)의 아들이며 사직공파 최수영, 통례공파 최수웅과 형제로 정리됩니다. 따라서 영의정 최항의 손자 항렬입니다.
최수걸의 관직과 생몰년, 묘소, 세거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부사공파에도 같은 이름의 사정공파(경연, 사천파)가 있어 서로 별개이니 혼동하지 마세요.
사정공파 후손이라면 족보에서 파조 최수걸과의 연결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분량이 짧은 것은 확인된 사실만 적었기 때문입니다.
희천공파는 낭장공파 4세 최사온(崔士溫)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종친회 계통 분파도에 따르면 최사온은 전서공 최윤문의 다섯 아들 중 한 사람으로 사예공 최사유(최항의 부친)의 아우 또는 형제이며. 파명의 유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최사온의 관직·생몰·묘소, 세거지, 대표 후손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파는 위키백과와 나무위키가 낭장공파 산하 파의 하나로 나열하는 것으로만 확인됩니다.
희천공파 후손이라면 종중 족보로 세계를 확인하세요. 이 설명은 확인된 사실만 적어 짧습니다.
교도공파는 부사공파 5세 지평공 최도원(崔道源)의 맏아들 최경부(崔景溥)를 파조로 한다고 종친회 계통 분파도가 정리합니다. 진위파·춘천파·순천파라는 별칭이 함께 소개되어, 후손이 경기 진위(평택)·강원 춘천·전남 순천 방면에 퍼졌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다만 최경부의 관직과 생몰, 파별 세거지 확인은 이번 조사에서 하지 못했습니다. 나무위키에는 춘천 삼천동, 평택 합정동 등의 집성촌이 소개되지만 어느 파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분파도 원문에서 둘째·셋째 아들의 파명이 모두 사정공파로 적혀 있는 등 오기가 의심되므로, 교도공파 후손은 반드시 족보로 확인하세요.
현감공파는 부사공파 5세 지평공 최도원의 아들 최경시(崔景時)를 파조로 하며 만경파라고도 한다고 종친회 계통 분파도가 정리합니다. 현감을 지냈다는 데서 파명이 나온 것으로 보이나 어느 고을 현감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만경은 지금의 전북 김제시 만경읍 일대이며, 부사공파 9세 최달하가 임진왜란 무렵 만경현 서면 갈밭에 정착한 이래 후손이 김제 일대에 세거했다고 소개됩니다. 대법관을 지낸 최병주가 최연의 21세손이라는 설명도 이 갈래와 이어집니다.
다만 이 파와 부사공파 전체 설명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파별 세계와 집성촌은 확인되는 만큼만 적었습니다. 후손은 족보로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최천로(시조), 최유가(중시조), 최사유(최항의 부친), 최항(조선 영의정·훈민정음 창제 참여), 최영린(최항의 맏아들), 최영호(찬성공파 파조), 최수웅(통례공파 파조·남원 노봉마을), 최흥원(조선 영의정·청백리), 최한기(조선 후기 실학자), 최병직(1894년 마지막 식년시 갑과 2위), 최명희(소설 『혼불』 작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삭녕 최씨의 대표 인물로는 먼저 시조 최천로와 중시조 최유가가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낭장공파 5세손 영의정 최항과 그 부친 최사유, 맏아들 최영린, 둘째 아들 최영호, 손자 최수웅이 이어지고, 최항의 증손 최흥원도 영의정에 올라 청백리에 녹선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양 과학을 받아들여 기학을 세운 실학자 최한기가 있고, 1894년 마지막 식년시에서 문과 갑과 2위로 급제한 최병직(최항의 16대손)이 있습니다. 현대에는 남원 노봉마을의 세거지 출신으로 『혼불』을 쓴 소설가 최명희가 대표적입니다. 이 밖에 나무위키는 축구 감독 최강희, 요리사 최강록 등도 삭녕 최씨로 소개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본관을 별도로 확인하지 못해 인물 소개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삭녕 최씨의 기록이 최항의 시대에 유독 많은 것은, 시조에서 1세조 사이의 문헌이 사라진 데 비해 최항과 그의 두 아들·증손 대에 관직과 실록 기록, 묘소와 신도비가 풍부하게 남았기 때문입니다. 최항 이전의 4대(선보·충·윤문·사유)는 족보와 종친회 자료로 이어지고, 최사유는 1402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것이 위키백과에 확인됩니다.
삭녕 최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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