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만주방면 · 대한민국장(1962)
| 생몰 | 1878 ~ 1937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의성 김씨 |
호는 일송(一松)이며, 187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영남의 대유학자 서산 김흥락(西山 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습니다. 1907년에는 유인식·김후병과 함께 협동학교를 설립하여 보수적이던 안동 지역에서 신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을 펼쳤습니다.
1911년 서간도로 망명한 뒤 이시영·이동녕·이상룡 등과 함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세워 독립군 양성의 기틀을 다졌고, 1914년에는 백서농장을 운영하며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였습니다. 이후 서로군정서 참모장, 국민대표회의 의장, 정의부 참모장 등을 지내며 만주 무장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로 활동해 김좌진·오동진과 더불어 만주의 '3대 맹장'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1931년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하였습니다.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시신은 승려 한용운이 수습해 장례를 치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