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보급과 향약 시행에 힘쓴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문신
| 생몰 | 1478 ~ 1543 |
| 시대 | 조선 |
| 본관 | 의성 김씨 |
김안국의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이다. 조광조·기준 등과 함께 김굉필의 문인으로 도학에 통달하여 지치주의 사림파의 선도자가 되었다.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예조판서·병조판서·대제학·좌참찬 등을 지냈다.
경상도·전라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소학》을 널리 권장하고 《여씨향약》을 비롯한 여러 언해서와 농서·의서를 간행·보급하여 백성의 교화에 힘썼다.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18년간 낙향해 있다가 1537년 복직되었으며, 이후에도 예조판서·대사헌·병조판서·좌참찬·대제학·찬성 등을 두루 지내며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묘소는 장단군 동면 해촌리 선영 곁에 있다. 저서로 《모재집》 《모재가훈》 등이 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경기 장단 동면 해촌리 선영에 묘소가 있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