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김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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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김씨(義城 金氏) — 신라 경순왕의 아들 김석을 시조로 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성씨입니다.

인구 — 약 287,469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의성 김씨란

신라 경순왕의 아들 김석을 시조로 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성씨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의성 김씨 인구는 약 287,469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의성)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의성 김씨(義城 金氏)는 경상북도 의성군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입니다. 의성은 신라 때 문소군(聞韶郡)이라 불렸기 때문에 문소 김씨라고도 하며,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약 287,469명으로 집계된 영남 대표 김씨의 하나입니다. 이름이 비슷한 안동 김씨, 김해 김씨(가락국 김수로왕 후손), 경주 김씨(신라 왕실) 등과는 본관도 시조도 다른 별개의 가문이므로, 같은 '김씨'라는 이유로 섞어 보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다만 신라 왕실 김씨를 큰 뿌리로 삼는다는 점에서 의성 김씨는 경주 김씨와 먼 조상(김알지)을 공유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시조는 김석(金錫)입니다. 전하는 바로는 신라 제56대 경순왕(金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로, 고려에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져 그 후손이 의성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키백과 등은 이 계보가 조선 후기에 전해진 『김은열 묘지명』에 근거한다는 점, 경순왕의 여러 아들이 《고려사》 등 다른 문헌이나 금석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 본관으로 '의성'이 역사서에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김용비(金龍庇) 무렵부터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따라서 김석 이하 초기 세계는 '전한다'로 읽는 것이 정확하며, 정확한 세계는 문중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석의 손자 대에서 김인술(金仁術)·김홍술(金弘術) 계열이 갈라졌다고 전합니다. 김홍술은 고려 개국 과정에서 공을 세운 인물로 소개되곤 합니다. 이후 8세손 김공우(金公瑀)의 세 아들 김용비·김용필·김용주가 각각 첨사공파·수사공(공)파·충의공파의 파조가 되어 오늘날 의성 김씨의 큰 뿌리를 이루었고, 여기에 찬성사공파·선략장군공파·참의공파 등이 더해집니다. 파 이름과 파조는 자료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적히므로 각 파 설명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문중은 안동·의성·성주·고령·영천 등 영남 내륙으로 흩어져 터를 잡았습니다. 첨사공파의 김거두(金居斗) 후손은 안동(풍산 일대에 살았다는 설명도 있음)에 세거했고, 충의공파의 김지선 후손은 의성 설성(雪城) 일대에서 번성했다고 합니다. 설성은 별도의 본관 설성 김씨로도 전해지니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요 파(派)

첨사공파, 수사공파, 충의공파, 찬성사공파, 선략장군공파, 참의공파

첨사공파 (詹事公派)

첨사공파는 8세손 김공우(金公瑀)의 맏아들로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지낸 김용비(金龍庇)를 파조로 합니다. 김용비는 고려 때 의성 일대의 도적 무리를 다스려 민심을 수습한 공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다고 전하나, 활동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역사서에서 본관 '의성'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이 김용비 무렵부터라고 설명합니다. 묘소는 의성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에 있다고 전합니다.

아들 김거두(金居斗)가 안동으로 옮겨 가 터를 넓혔다고 하며, 풍산 일대에 살았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 계통이 안동 내앞(천전)·금계 등지에 세거하면서, 후손에서 학봉 김성일(金誠一)과 동강 김우옹(金宇顒) 등이 나왔습니다. 조선 초 의성군에 봉해진 김영렬(金英烈)도 이 파 인물입니다.

첨사공파 아래에는 상서공파·평장사공파·양소공파·남파공파·참판공파 등 여러 소파가 있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안동 내앞의 큰종가(보물 제450호 종택)와 서후면 금계리의 학봉종택이 모두 이 계통의 후손이 지켜 온 집으로 알려져 있으나, 소파별 소속은 문중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수사공파 (守司空派)

수사공파는 김공우의 둘째 아들로 수사공(守司空)을 지낸 김용필(金龍弼)을 파조로 합니다. 자료에 따라 수사공공파(守司空公派)로도 적습니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모재 김안국(金安國)과 그 아우 사재 김정국(金正國) 형제가 이 계통에서 나왔다고 소개되며, 하위 파로 김윤관(金允寛)의 어사공파 등이 있습니다. 두 형제는 《소학》 보급과 향약 시행, 백성 교화에 힘쓴 사림 학자로 이름이 높습니다. 사이트에는 같은 이름의 김정국이 여러 명 있으니, 학자 김정국과 근대 독립유공자 김정국을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의공파 (忠毅公派)

충의공파는 김공우의 막내아들로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김용주(金龍珠)를 파조로 합니다.

하위에 상장군을 지낸 김원(金源)의 문원공파가 있으며, 김용주의 증손으로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김지선이 설성(雪城)에 터를 잡으면서 그 일대에서 후손이 번성했다고 전합니다.

찬성사공파 (贊成事公派)

찬성사공파는 시조 김석의 손자 김홍술(金弘術) 계열로, 김홍술의 손자인 5세손 김경염(金景琰)을 파시조로 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파 이름은 이 계통에서 고려 말 문하찬성사를 지낸 김성단(金成丹)에게서 온 것으로, 일부 자료는 김성단을 파조로 듭니다. 김성단은 고려가 망하자 의성으로 물러나 은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선략장군공파 (宣略將軍公派)

선략장군공파는 시조 김석의 손자 김인술(金仁術) 계열에서 갈라진 파로 전해집니다.

의성 김씨는 김석의 손자인 김인술·김홍술 대에서 처음 갈래가 나뉘었으며, 선략장군공파는 그 가운데 김인술의 후손 계통입니다. 일부 자료는 김흥(金興)을 파조로 적고 있습니다.

참의공파 (參議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는 시조 김석의 후손 가운데 판사공 김수덕(金修德)의 손자인 13세 김용기(金用起)를 파조로 하는 갈래로 전해집니다. 문헌·파보에 따라서는 12세 수덕의 셋째 아들인 13세 용초·용기 계열로 이어진다고 적기도 하여, 파조와 세대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 등 영남 지역에 세거지를 이루었고, 이곳에는 참의공파 후손들의 재실인 월암재(月巖齋)가 세워져 보존되어 왔습니다. 참의공파를 삼의공파·상의공파로 부르는 경우도 있어, 검색에서는 이 이름들로도 찾을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소속 여부와 세계는 반드시 본인 문중의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김석(의성 김씨 시조), 김성일(학봉·조선 문신), 김우옹(동강·조선 학자), 김안국(조선 학자), 김창숙(독립운동가·유학자), 김동삼(독립운동가), 김대락(독립운동가), 김도화(의병·독립유공자), 김흥락(학봉 후손·안동 유림)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의성 김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의성 김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김창숙 (1879~1962)유림을 대표한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김동삼 (1878~1937)독립유공자 · 만주방면 · 대한민국장(1962)김도화 (1825~1912)독립유공자 · 의병 · 애국장(1990)김흥락 (1827~1899)독립유공자 · 의병 · 의병김대락 (1845~1915)독립유공자 · 만주방면 · 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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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내앞마을(천전)의 의성 김씨

의성 김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흔히 '내앞마을'이라 부르는 동족마을입니다. 600년 넘게 의성 김씨가 세거해 온 마을로, 전하는 이야기로는 김만근(金萬謹)이 처가를 따라 이곳에 들어와 터를 잡았으며(처가를 오씨로 적는 자료가 있으나 해주 오씨인지 등 표기는 일정하지 않음), 그의 손자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이 마을을 크게 일으킨 중흥조로 꼽힙니다. 김진은 1525년 사마시에 합격한 뒤 벼슬보다 자녀 교육과 후진 양성에 힘썼고, 다섯 아들이 모두 학문과 과거로 이름을 얻어 '오룡지가(五龍之家)'라 불렸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학봉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학자가 되었고, 구봉(귀봉이라고도 적음) 김수일(金守一, 1528~1583)은 아버지에게 받은 땅에 1568년 백운정(白雲亭)을 지었습니다. 같은 자료를 두고 김수일의 호를 '구봉'으로 적기도 하고 '귀봉'으로 적기도 하니, 이 점은 병기해 둡니다.

내앞마을에는 의성 김씨 큰종가인 안동 의성김씨 종택(보물 제450호, 1967년 지정)과 김수일 계통의 작은종가(귀봉종택)가 있습니다. 종택은 사랑채·안채·행랑채로 나뉘고 안팎을 구분하는 유교적 구성이 뚜렷한 조선 중기 양반 가옥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건물을 학봉 김성일이 다시 지었다고 전합니다. 백운정과 마을 앞 개호송(開湖松) 숲 일원은 2007년 12월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개호송 숲은 김만근이 마을 수구(水口)를 보완하려고 성종 무렵 조성한 것을 1605년 대홍수로 잃은 뒤 운천 김용의 발의로 다시 가꾸었다고 합니다. 임하댐 건설로 마을 일부와 청계공이 가꾼 도연 같은 경관이 물에 잠겼고, 옛 건물 일부는 옮겨 보존되었습니다. 마을 안에는 일송 김동삼 생가와 안동독립운동기념관도 있습니다. 문화재 지정 종목·번호는 국가유산청 누리집에서 다시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안동 서후면 금계리에는 학봉 김성일의 학봉종택(義城金氏 鶴峰宗宅)이 있어, 후손들이 종가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내앞의 큰종가와는 서로 다른 집이므로 구분해서 보셔야 합니다. 김성일의 외손 계통과 문집·유물은 학봉 선생을 기리는 사업과 함께 전해집니다.

학문과 명문가

조선시대 의성 김씨는 많은 문과 급제자와 학자를 낸 영남의 명문가로 평가됩니다. 학봉 김성일은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정사 황윤길과 다른 견해를 보고한 일로 이름이 높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초유사로 의병을 모아 진주 방어를 독려하다 병으로 순직했습니다. 같은 문중의 동강 김우옹(金宇顒)은 성주에서 남명 조식의 문하로 성장해 이조참판 등을 지냈고, 모재 김안국·사재 김정국 형제는 중종 때 사림 학자로 《소학》 보급과 향약 시행, 백성 교화에 힘썼습니다. 이들은 각각 첨사공파(김성일·김우옹)와 수사공파(김안국 형제) 계통으로 소개됩니다. 학봉의 학통은 후손 서산 김흥락(김흥락) 등으로 이어져 구한말 안동 유림의 중심이 되었고, 이 학맥 속에서 의병과 계몽운동, 독립운동의 인물들이 길러졌습니다.

독립운동 가문

의성 김씨는 단일 성씨 가운데 독립유공자를 가장 많이 낸 가문의 하나로 흔히 소개됩니다. 특히 내앞마을은 마을 출신 독립유공자가 스무 명 안팎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상징적인 곳입니다(정확한 인원은 조사 기준에 따라 다릅니다). 대표 인물을 보면, 백하 김대락(1845~1915)은 1911년 일흔에 가까운 나이로 가족을 이끌고 만주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강습소 등 독립운동 기반을 닦는 데 힘을 보탰고, 일송 김동삼(1878~1937)은 1907년 이상룡·유인식과 함께 안동에 협동학교를 세우고(학교 재원은 주로 김동삼이 마련했다고 전함) 이후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와 한족회, 정의부 등에서 활동한 '만주벌의 호랑이'로 불렸습니다. 석주 이상룡의 부인 김우락 역시 이 가문 출신입니다. 한편 성주 출신의 심산 김창숙(1879~1962)은 파리장서(巴里長書) 사건을 주도한 유림의 대표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창립에 관여했습니다. 김도화(김도화) 등 의병 활동으로 서훈된 인물도 있습니다. 이들은 본관이 같다는 점에서 한 문중으로 묶이지만, 파와 세거지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알아 두시면 좋습니다.

참고로 같은 이름의 김정국이 이 문중에 여러 명 있어(조선 중기의 학자 김정국과 근대 독립유공자 등) 동명이인이 많습니다. 사이트의 인물 항목에서 생몰년과 역할을 함께 확인하세요.

인구와 세거지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의성 김씨는 약 287,469명입니다. 경상북도 안동시·영주시·영천시·의성군·성주군·청송군·영양군·고령군 등 영남 내륙에 집성촌이 많이 분포하며, 서울·경기·충청(청주·서산 등)으로 퍼진 후손도 많습니다. 안동의 내앞(천전)·금계, 의성의 사곡면 토현리 일대(오토산에 첨사공파 김용비 묘소가 있다고 전함), 고령 운수면 월산리(참의공파 월암재) 등이 문중에서 자주 언급되는 곳입니다.

종친회와 항렬

의성 김씨는 문중이 크기 때문에 파별로 종약원·종회를 두는 경우가 많고, 전국 규모의 종친 조직은 '의성김씨 대종회'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공식 누리집과 연락처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가입·연락은 문중 어른이나 파 종회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항렬은 위키백과에 31~44세 대동항렬 표가 실려 있으나 표기가 깨져 있어 이곳에서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파마다 항렬자가 다르게 쓰이므로 본인 족보의 항렬 표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다른 김씨와 헷갈리지 않으려면

족보를 찾을 때는 먼저 본관(의성)과 파, 시조(김석)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안동에 세거하더라도 안동 김씨·김해 김씨는 시조가 다르고, 의성 김씨는 안동 지역에 오래 터를 잡은 별도의 가문입니다. 또한 설성 김씨·광주 김씨 등 이름이 비슷한 본관도 있으니 한자 본관(義城)을 꼭 확인하세요.

참고 영상

아래 영상은 의성 김씨의 독립운동가, 학자 형제, 문중의 유래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입니다.

단일성씨로 가장 많다 #의성김씨 독립운동가 정리영상
백성에게 유교를 보급하다 #의성김씨 대표학자 김안국·김정국 형제
의성김씨 문중의 유래와 뿌리공원 조형물

참고: 위키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백운정 항목, 지역 언론 기사 등 공개 자료. 세부 파·세계는 문중·족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의성 김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의성)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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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 김씨 시조 계보도

의성 김씨 시조 계보도김석~청계 김진·학봉 김성일·모재 김안국
공개된 사료로 확인되는 의성 김씨 윗대 계보를 실제 족보트리로 그렸습니다. 인물을 누르면 그 분부터 위쪽 계보를 내 족보 맨 위로 가져올 수 있어요(요금제 인물 수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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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김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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