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간관, 조선 초 대사헌·예조판서·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청백리, 호 파계·시호 문평
| 생몰 | 1345 ~ 1412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경산 전씨 |
전백영(1345~1412)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옥산(경산)이며, 옥산 전씨 시조 전영령의 6세손으로 전합니다. 호는 파계(巴溪), 시호는 문평(文平)입니다.
위키백과는 1371년 문과에 급제했다고 하며, 고려 우왕 때 간관으로서 이인임을 탄핵하다 좌천되어 하동에 유배되었습니다. 조선에서는 간의대부·경상도도사·병조전서·대사헌(1399)·예조판서·경기도관찰사·지의정부사 등을 지냈고, 1404년 하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청백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고려 우왕 때 간관으로서 권신 이인임을 탄핵하다 좌천되어 경남 하동에 유배되었다고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1371년 문과 급제로 적고 있어, 이 시기 활동이 급제 이후의 일로 이어집니다.
조선이 서자 간의대부·경상도도사·병조전서·대사헌·예조판서·경기도관찰사·지의정부사 등을 지냈고, 1404년에는 하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청백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일부 소개 글은 태종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고 적습니다.
대구 가창면 상원리의 박곡서당은 그를 추모하는 재실이자 서당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린 한천서원(전이갑·전의갑 형제를 모셨다고 전함)의 재목을 가져다 지었다고 하며, 화재 뒤 현재 자리로 옮겼습니다. 5세손 전경창을 기리는 무동재가 수성구 파동에 있습니다. 시조 전영령과 정선 전씨의 관계는 경산 전씨를 보세요.
묘소는 대구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 내상원에 있습니다. 묘 곁에 세운 재실이 박곡서당으로 이어졌고, 1984년 문평공 신도비가 세워졌습니다.
5세손 전경창이 선조 때 정언·지평을 지냈고, 문평공 종손이 박곡서당 인근 옥산고택에 거주한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