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옥산) 전씨의 시조, 고려 신종 때 신호위대장군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에 봉해졌다고 전함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고려 신종 때(1197~1204) |
| 본관 | 경산 전씨 |
전영령(全永齡)은 경산 전씨(옥산 전씨)의 시조입니다. 고려 신종 때 신호위 대장군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졌다고 전하며, 도시조 전섭의 27세손으로 소개됩니다. 한편 세계일보 성씨 연재는 전이갑의 12대손이라고 하여 세대 수 기록이 자료마다 다릅니다.
옥산은 경산의 고려 때 별호이며, 옥산 전씨는 정선 전씨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설명됩니다. 아들로 시어사를 지낸 전공량이 전해집니다.
전영령은 고려 신종 때 신호위 대장군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에 봉해졌고, 이에 따라 후손들이 옥산(경산)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시조의 생몰년은 위키백과에 1197~1204년으로 적혀 있으나, 이는 신종의 재위 기간으로 보여 정확한 생몰년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옥산 전씨는 정선 전씨에서 분적한 성씨로 설명되며, 후손들이 옥산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경산 전씨를 보세요.
묘는 원래 경산시 남천면 신석리에 있었으나 실전되었고, 뒤에 단과 비를 세워 남천면 대명리로 옮겼다고 합니다(전영령 단비).
아들 전공량, 손자 전윤재 등이 전해지며, 6세손으로 전백영이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