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고려 개국공신(삼중대광 태사), 정선 전씨의 중시조로 소개되는 인물
| 생몰 | 927 |
| 시대 | 고려 초(후삼국시대) |
| 본관 | 정선 전씨 |
전이갑(全以甲, ?~927)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합한 개국공신으로, 동생 전의갑(全義甲)과 사촌 전락(全樂)과 함께 삼충공(三忠公)으로 불립니다. 정선 전씨의 중시조로 소개되며, 아우와 함께 통합삼한개국공신에 올랐습니다.
927년 공산(지금의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군에게 포위된 왕건을 탈출시키려고 신숭겸·김락 등과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고 전합니다. 종친회가 소개하는 1685년의 수교문에는 형제가 궁예를 몰아내는 거사에서 왕건을 추대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고, 전사한 뒤 이갑에게 충열(忠烈), 의갑에게 충강(忠康)의 시호가 내려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927년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왕건의 군사가 견훤에게 크게 패했을 때 신숭겸을 비롯한 여러 장수가 전사했습니다. 정선 전씨 종친회는 이 자리에서 신숭겸처럼 왕을 대신해 적을 유인한 이가 전이갑·전의갑·전락 세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팔공산이라는 이름이 이때 순절한 여덟 장수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어느 장수가 포함되었는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전락의 후손은 천안 전씨로 갈라졌다고 소개되며(천안 전씨), 전이갑 계통이 정선 전씨의 주류로 이어졌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전락의 본관을 정선으로 보는 자료와 천안으로 보는 자료가 있어 세부는 갈립니다. 도시조 전섭에서 전이갑·전락까지의 세대 수도 문중마다 다릅니다.
무덤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합천에 1692년 도계서원, 대구에 1838년 한천서원이 형제를 기려 세워졌다고 전하며(나무위키), 한천서원은 1989년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아들 전보인(全輔仁, ?~1019)은 성종 때 경학박사로 포상받고 현종 때 상서좌복야에 올랐다고 합니다(위키백과). 아들이라는 설명은 일부 자료에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