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전씨(旌善 全氏) — 백제 십제공신 전섭을 도시조로 하는 전씨의 대종(大宗)으로, 중시조 전선이 정선군에 봉해지며 정선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채미헌 전오륜, 간송 전형필, 노동운동가 전태일 등이 이 본관으로 소개됩니다.
백제 십제공신 전섭을 도시조로 하는 전씨의 대종(大宗)으로, 중시조 전선이 정선군에 봉해지며 정선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채미헌 전오륜, 간송 전형필, 노동운동가 전태일 등이 이 본관으로 소개됩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정선 전씨 인구는 약 166,96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전씨라도 본관(정선)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정선 전씨(旌善 全氏)는 강원도 정선군을 본관으로 하는 전씨(全氏)로, 우리나라 전씨 가운데 대종(大宗)으로 불립니다. 종친회는 모든 전씨가 백제 건국을 도운 십제공신 전섭(全聶)을 도시조로 하고 정선을 대종으로 삼는다고 설명합니다. 전섭은 기원전 18년 온조를 도와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고 전하며,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단소가 있어 매년 양력 10월 3일 제향을 올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천안 전씨·담양 전씨·옥천 전씨·전주 전씨 등도 모두 이 도시조에서 갈라진 집안으로 소개됩니다.
삼국 통일의 전란 속에서 전섭의 후손 기록은 7세에 걸쳐 끊겼다가, 8세손 전선(全愃)에 이르러 이어집니다. 전선은 신라 성덕왕 22년(723) 당나라에 다녀와 문물을 들여오고 전법판서에 올라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고 하며, 후손이 그를 득관 중시조로 받들어 정선을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묘소는 정선군 남면 낙동리 서운산에 있고 매년 음력 9월 15일 시향을 올립니다.
고려 초 개국공신 전이갑(全以甲)은 동생 전의갑, 사촌 전락과 함께 삼충공으로 불리며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고 전합니다. 전락의 후손은 천안 전씨로 갈라졌다고 소개되고, 이갑의 아들 전보인은 상서좌복야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갑을 정선 전씨의 중시조로 소개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시조·중시조 표기는 자료마다 달라 족보와 대조가 필요합니다.
정선 전씨는 파조를 기준으로 판서공파(전수송)·복야공파(전길)·채미헌공파(전오륜)·석릉군파(전윤장)·상호군파(전영부)·후석릉군파(전룡) 여섯 파로 나뉩니다. 후석릉군파는 임하군파라고도 부르며, 위키백과 등은 이를 제6파로 둡니다. 종친회는 정선 전씨 자손의 약 80%가 석릉군파 계통이라고 밝힌 적이 있으나 검증된 수치는 아닙니다(강원도민일보 2002).
종친회에 따르면 전씨는 정선·천안·성산 등 18본으로 나뉘었으나 모두 전섭의 후예입니다. 천안 전씨의 관조 전락(全樂)은 전섭의 16세손이자 전이갑의 사촌으로 소개되지만, 천안 전씨 쪽에서는 정선파가 말하는 위 계보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습니다. 평강·용궁·옥천·경산·나주·전주 등 18본의 정확한 분적 관계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가 정리한 집성촌은 정선군 일원(고한읍·사북읍·정선읍·남면·북평면·여량면·화암면 등), 평창군 미탄면 회동리, 철원군, 고성군 간성읍,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원주 신림면 황둔리, 파주 법원읍 대능리, 충주 동량면, 대구 북구 도남동, 문경 동로면, 안동 북후면, 영덕 강구면 하저리(복야공파), 성주 금수면 무학리(후석릉군파), 거창 마리면 월계리·영승리(채미헌공파), 함양 서하면, 합천 삼가면 두모리, 진주 망경동 등입니다. 북한 지역으로는 평북 정주, 함남 안변·북청·단천, 강원 이천·평강, 황해 금천 등에 집성촌이 있었습니다. 강릉에는 전선의 23세손 전충효(1433~1492)가 용지촌에 입향했다고 합니다.
채미헌공파는 전오륜을 파조로 하며, 장남 전맹겸이 거창 마리면 영승리에 입향한 이래 거창과 정선을 두 축으로 세거해 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파별 설명을 참고하세요.
정선군 남면 낙동리 서운산에는 중시조 전선의 묘소와 전오륜·석릉군·도원군 묘소가 있는 문중 묘역, 서운재·숭모사 재실, 1925년 세운 시조 신도비각이 있다고 합니다(강원도민일보, 종친회). 같은 마을의 거칠현동에는 칠현사·칠현비·고려유신비가 있습니다. 거창 영승리에는 영승서원(1932, 이황·송준길·전철 배향)·사락정·경모재·이요당·농월담 등이 있습니다(디지털거창문화대전). 성주 무학리에는 전룡을 기리는 표충재와 1936년 신도비가 있습니다.
종친회로는 정선전씨 임하군파 종친회(jsjc.kr, 후석릉군파)가 공식 사이트를 운영하며, 채미헌공파 종회가 따로 있다는 안내가 있으나 공식 주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20년 경자보 족보가 발간되었다고 소개됩니다. 소속 파의 종친회는 문중에 문의하세요.
위키백과에는 47세부터의 항렬자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47세 형(鎣), 48세 우(雨), 49세 인(寅), 50세 병(炳), 51세 영(瑛), 52세 탁(鐸), 53세 제(濟), 54세 표(杓), 55세 찬(燦), 56세 재(宰), 57세 상(商), 58세 구(求), 59세 계(桂), 60세 휴(烋), 61세 규(珪), 62세 태(兌), 63세 한(澣), 64세 목(穆), 65세 형(炯), 66세 순(珣), 67세 용(鏞), 68세 준(濬), 69세 장(樟), 70세 도(燾), 71세 정(珽), 72세 일(鎰), 73세 홍(泓), 74세 환(桓) 순이며, 이후도 이어집니다. 파와 지역에 따라 실제 사용은 다르므로 반드시 족보와 대조하세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정선 전씨는 166,965명입니다. 같은 조사의 다른 집계는 176,226명으로, 한자가 비슷한 선선 전씨 8,858명과 시선 전씨 403명을 합친 값(공무원의 기재 착오로 보임)이라고 설명하는 자료가 있어 출처를 병기합니다. 1985년 124,993명(30,623가구), 2000년 141,380명(44,316가구)으로 집계됩니다(위키백과). 종친회는 전씨 전체를 약 50만 명, 정선이 약 14만 명이라고 소개합니다(2000년 통계 기준).
고려와 조선의 인물로는 채미헌 전오륜, 호성공신 전룡, 개화기의 전덕기 목사,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노동운동가 전태일 등이 있습니다. 위키백과 인물 목록에는 제16대 국세청장 전군표, 제12대 상공부장관 전택보, 제4대 건설부장관 전예용 등도 소개됩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은 천안 전씨(전락의 후손)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관은 반드시 족보로 확인하세요.
판서공파, 복야공파, 채미헌공파, 석릉군파, 상호군파, 후석릉군파
판서공파는 전수송(全守松)을 파조로 하는 정선 전씨의 제1파입니다. 전수송은 정선 전씨 25세로, 고려 신종(재위 1197~1204) 때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호부는 호구·공부·전량을 맡던 관아이고 상서는 육부의 으뜸 벼슬로, 상서는 뒤에 판서로 고쳐 불렸으므로 후손이 판서공파라는 파명을 쓰게 되었다고 풀이됩니다.
종친회가 전하는 계보로는 아버지가 정난공신 금자광록대부 대장군 상주국 전존걸이고, 형은 경상도순문사를 지낸 전수룡입니다. 묘는 함경도 북청군 차서면 상릉리 마전동에 있다고 하나 현재는 찾아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후손은 평안북도 선천을 중심으로 평안도 일대에 많이 살았다고 하며, 분단 뒤에는 남쪽으로 내려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재 남한의 집성촌과 종친회에 관한 공식 자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소속 여부는 문중과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복야공파는 전길(全佶)을 파조로 하는 정선 전씨의 제2파로, 평안북도 정주군을 중심으로 세거해 왔습니다. 전길은 정선 전씨 28세로, 밀직부사로 있던 고려 고종 18년(1231) 몽골 장군 살리타의 침입 때 의주에서 휘하 군졸을 이끌고 맞서 싸워 큰 전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첨의부좌복야(僉議府左僕射)에 제수되었다고 종친회가 전합니다.
복야(僕射)는 고려 시대 상서도성의 정2품 벼슬로 상서령 다음가는 차관직이었습니다. 이 관직명에서 파명이 나왔으며, 그의 후손을 복야공파라 부릅니다.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하저리에 복야공파 집성촌이 있습니다. 평안북도 정주에는 옥천면 문인동·임해면 동로동 등 정선 전씨 집성촌이 있었다고 소개되나, 분단 뒤 남하한 후손의 현황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채미헌공파는 고려 말 충신 채미헌(採薇軒) 전오륜(全五倫)을 파조로 하는 제3파입니다. 전오륜(1334~1425)은 정선 전씨 29세로 자는 중지, 호는 채미헌입니다. 대제학 전분의 아들이라고 하며(아버지를 전빈으로 적는 자료도 있습니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합천지군사·진주목사·경상도안렴사를 지냈고, 1391년 우상시·좌산기상시·형조판서에 올랐습니다. 이색·정몽주와 교유하며 국정의 잘못을 탄핵하고 상소했다고 합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개성 광덕산 기슭의 두문동에 들어갔고, 태조의 회유를 따르지 않아 본향 정선에 본향안치되었다고 합니다. 풀려난 뒤 정선 서운산에 은거했고, 호 채미헌은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를 캐 먹다 죽은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땄습니다.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뒷날 경남 안의의 서산서원에 제향되었다고 전합니다. 1425년(세종 7) 아들 전맹겸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선군 남면 낙동리의 거칠현동은 전오륜을 비롯해 김충한·고천우·이수생·신안·변귀수·김위 등 칠현이 은거했다는 골짜기로, 칠현사가 있고 1985년 6월 정선 조양회가 세운 칠현비와 칠현의 시를 새긴 고려유신비가 있습니다. 이곳이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라는 전승이 있어, 종친회는 전오륜이 아리랑 노랫말("만수산 검은 구름이 모여든다")을 지었다고 소개합니다. 구비문학이라 기록은 없으며 정선아리랑은 1971년 강원도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채미헌공파는 거창군과 정선군을 중심으로 살며, 오늘날 후손 대부분은 장남 전맹겸(全孟謙)의 후손입니다. 전맹겸은 합천(강양) 군수를 지낸 뒤 만년에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에 정착해 이 지역의 입향조가 되었습니다. 33세 전철은 퇴계 이황의 처외숙이며 1543년 이황이 영승을 찾았다고 하고, 1932년 유림이 영승서원을 세워 이황·송준길·전철을 배향했습니다. 영승 일대에는 사락정, 동원재(43세 전정능), 농월담(33세 전식 비), 경모재와 이요당, 전맹겸을 기리는 '상호군 정선 전공 유적비', 우수재(36세 전시언), 효자 전안택 정려(1765), 삼우당·숭모재와 열녀각이 있습니다. 재일교포 전병수가 영승서원·경모재·이요당 중건에 기여했습니다.
2000년 통계로 거창군의 정선 전씨는 155가구 407명이며 영승리에는 18가구가 남았고, 월계리 학동과 말흘리 송림도 한때 집성촌이었습니다(디지털거창문화대전). 정선군에도 후손이 있어 서운산 선영에서 매년 시향을 모십니다. 묘소는 처음 합천군 봉산면에 있다가 합천댐 때문에 이장되어 현재 정선 낙동리 서운산 묘역에 있다고 하며, 이장 연도는 1986년(위키백과)과 1994년(강원도민일보)으로 갈립니다. 종친회 사이트는 채미헌공파 종회가 있다고 안내하지만 공식 주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석릉군파 쪽 종친이 정선 전씨 후손의 약 20%가 채미헌 계열이라고 밝힌 적도 있으나 검증된 수치는 아닙니다.
석릉군파는 전윤장(全允臧)을 파조로 하는 정선 전씨의 제4파입니다. 전윤장은 정선 전씨 30세로, 충숙왕 때 출사해 충혜왕·충목왕·충정왕·공민왕까지 5대에 걸쳐 벼슬했다고 종친회가 소개합니다. 1342년 조적의 난 때 상호군으로 왕을 시종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었고, 1343년 서해평양도순위사, 1347년 동지밀직사사 교주도도순문사로 쌍성의 인구를 조사했으며, 1348년 첨의평리, 1349년 강릉대군(뒤의 공민왕)을 원나라에 호종한 공으로 1351년 첨의찬성사에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강원도민일보는 종친의 말을 빌려 그를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석능군(석릉군)으로 소개하고 정선 전씨의 중시조로 볼 수 있다고 전합니다. 직책은 자료마다 달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서운산 선영에 전오륜과 도원군 전영보의 묘소가 있고 그 옆이 석릉군 윤장의 묘소라고 종친이 전합니다.
후손은 강원도 정선군을 중심으로 충청북도 충주시와 충북 북부 지역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정선 전씨 자손의 약 80%가 이 계통이라는 종친회장의 말이 신문에 실린 적이 있으나 검증된 수치는 아닙니다. 석릉군파 종친회의 공식 주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조선 시대 호성공신 전룡의 후석릉군파와는 별개의 갈래입니다.
상호군파는 전영부(全英富)를 파조로 하는 정선 전씨의 제5파로, 함경북도 경성군을 중심으로 세거해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영부는 정선 전씨 30세로, 고려 때 경서에 밝은 9명을 뽑는 시험에서 선발되었다고 하며, 조선 태조 6년(1397) 7월 11일 순녕군 이지, 중추원 상의 이천우, 첨절제사 전영부·장철 등을 보내 갑사와 척석군을 이끌고 배를 타고 왜구를 쫓게 한 기록에 이름이 보인다고 종친회가 소개합니다. 왜구를 효과적으로 격퇴한 공으로 상호군을 지냈다고 합니다.
첨절제사는 종3품 지방 무관직으로, 조선 초 진관체제에서 거진의 장이었습니다. 고려 말 도원군 전영보와 이름이 비슷하나 다른 인물이므로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후손은 함경북도 경성군을 중심으로 살았고 분단 후 남쪽으로 내려온 이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집성촌·종친회 정보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소속 여부는 족보로 확인하세요.
후석릉군파는 정선 전씨 제6파로 임하군파(臨河君派)라고도 부르며, 임진왜란 때 호성공신 3등에 책훈되어 석릉군(石陵君)에 봉해진 전룡(全龍, 1559~?)을 파조로 합니다. 전룡은 정선 전씨 42세, 자는 여견, 호는 석천입니다.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고 종묘의 위패를 모셔 오는 과정에서 왜군에게 왼쪽 뺨과 귀를 크게 다치면서도 임무를 마쳤다고 하며, 1604년 호성공신 3등에 책훈되어 2계급 특진과 노비 7명, 토지 60결, 말 1필, 은 등을 받았다고 종친회가 소개합니다. 아들 전대익은 청송부사·벽동군수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공신록에는 이항복·정곤수가 1등, 이원익·윤두수·유성룡 등이 2등, 전룡·허준·정탁 등이 3등으로 올라 있고, 종친회는 안동 하회마을 유성룡 댁에서 그 공신록을 볼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후석릉군파라는 이름은 고려 때의 석릉군 전윤장과 구분하기 위한 것입니다.
경기도 시흥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성주·칠곡, 대구, 강릉 등지에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전룡의 넷째 아들 전대붕(어모장군 부호군)과 다섯째 아들 전대봉(군자감정) 형제가 임진왜란 때(1592) 시흥에서 성주로 내려와 입향조가 되었고,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선암(배바위)을 중심으로 용암면 중거리, 월항면 인촌리, 초전면 봉정리 등지에서 400여 년을 세거했습니다. 무학리에는 전룡의 충의를 기리는 표충재가 있고 1936년 의왕 이강이 지은 신도비가 있으며, 중거리의 경사재(전섬봉 1727~1774), 인촌리의 수인재(전영윤 1871~1944)도 이 집안의 재실로 소개됩니다. 2015년 성주군 일대 거주 인구는 약 203명입니다(디지털성주문화대전).
종친회로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로에 사무실을 둔 정선전씨 임하군파 종친회가 있으며 jsjc.kr 에서 족보와 시향 일정을 안내합니다. 종친회는 석릉군 묘역이 있는 경기도 광명시에서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 시제를 지낸다고 후기에 적고 있습니다(2017년 기준, 일정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 종친회에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전섭(도시조·백제 십제공신), 전선(득관 중시조), 전이갑(고려 개국공신), 전오륜(채미헌공파 파조·두문동 72현), 전수송(판서공파 파조), 전길(복야공파 파조), 전윤장(석릉군파 파조), 전영부(상호군파 파조), 전룡(후석릉군파 파조·호성공신), 전맹겸(거창 입향조), 전덕기(상동교회 목사·독립운동가), 전형필(간송미술관 설립), 전태일(노동운동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정선 전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정선 전씨 가운데 채미헌공파는 고려 말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전오륜을 파조로 하며, 그의 절의는 정선아리랑 전승과 이어집니다. 1392년 고려가 망한 뒤 정선 서운산에 은거한 전오륜과 칠현이 지내던 거칠현동은 정선군 남면 낙동리에 있으며, 칠현사와 칠현비가 있습니다. 장남 전맹겸이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에 입향하면서 거창 일대에 후손이 퍼졌고, 33세 전철은 퇴계 이황의 처외숙으로 1543년 이황이 영승을 찾아 사락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1932년 유림이 영승서원을 세워 이황·송준길·전철을 모셨고, 재일교포 전병수가 서원과 경모재, 이요당 중건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도시조 전섭, 득관 중시조 전선, 고려 개국공신 전이갑, 여섯 파조 전수송·전길·전오륜·전윤장·전영부·전룡, 근현대의 전덕기·전형필·전태일 등을 인물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의 시조·중시조·파조 관련 서술은 종친회 설명과 위키백과·나무위키·향토문화전자대전을 조합한 것으로, 자료마다 한자·세대·연대가 다릅니다. 반드시 본인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정선 전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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